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봉림사지의 흔적

천부인권 2009. 3. 30. 10:46

 

창원봉림사지발굴조사보고(昌原鳳林寺址發.hwp

 

 <봉림사지의 흔적>

봉림사지의 창건연대를 추정하기 위해서는 우선 鳳林寺 眞鏡大師塔碑의 전문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 전문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故眞鏡

大師碑


有唐 新羅國 故國師 諡眞鏡大師 寶月凌空之塔 碑銘 幷序

門下僧 幸期 奉敎書

門人 朝請大夫 前守執事侍郞 賜紫金魚袋 崔仁渷篆

余製


余聞 高高天象 非唯占廣闊之名 厚厚地儀 不獨稱幽玄之號. 豈若 栖禪上士 悟法眞人 跨四大而 遊化觀風 避三端而 晏居翫月, 遂使 假威禪伯 掃魔□□」離亂之時 追令法王 扶釋敎於昇平之際, 以至慈雲再蔭 佛日重輝 外道咸賓 彌天率服 持秘印而 發揮奧旨 擧玄網而 弘闡眞宗, 唯我大師 則其人也.」

大師 諱審希 俗姓新金氏, 其先 任那王族. 草拔聖枝 每苦隣兵 投於我國. 遠祖興武大王 鼇山稟氣 鰈水騰精, 握文符而 出自相庭 携武略而 高扶王室, □□」終平 二敵永安 兎郡之人 克奉三朝 遐撫辰韓之俗. 考盃相 道高莊老 志慕松喬, 水雲雖縱其閑居 朝野恨其無貴仕. 妣朴氏 嘗以坐而假寐 夢得休□ □」後追思 因驚有娠, 便以斷其葷血 虛此身心 潛感幽靈 冀生智子. 以大中九年 十二月 十日 誕生. 大師 異姿瞻發 神色融明, 綺紈而未有童心, 齠齔而□□」佛事 聚沙成塔 摘葉獻香.

年九歲 徑往惠目山 謁圓鑑大師. 大師 知有惠牙 許栖祇樹. 歲年雖少 心意尙精, 勤勞則高鳳推功 敏捷則揚烏讓美, 俾踐僧□ □」離法堂. 咸通九年 先大師寢疾 乃召大師云, 此法 本自西天 東來中國 一花啓發 六葉敷榮 歷代相承 不令斷絶. 我曩遊中土 曾事百巖 百巖承嗣於□□」 江西繼明於南嶽 南嶽 則漕溪之子 是嵩嶺之玄孫, 雖信衣不傳 而心印相授 遠嗣如來之敎 長開迦葉之宗, 汝傳以心燈 吾付爲法信. 寂然無語 因□□」洹. 大師 目訣悲深 心喪懇切 尤積亡師之慟 實增絶學之憂. 十有九 受具足戒. 旣而草繫興懷 蓬飄託跡 何勞跋涉 卽事巡遊. 訪名山而 仰止高山 探□□」而 終尋絶境. 或問曰, 大師 雖備遊此土 遍謁玄關, 而巡歷他方 須參碩彦. 大師答曰, 自達摩付法 惠可傳心 禪宗所以東流 學者何由西去, 貧道已□□」目 方接芳塵 豈料捨筏之心 猶軫乘桴之志. 文德初歲 乾寧末年 先宴坐於松溪 學人雨聚, 暫栖遲於雪嶽 禪客風馳, 何往不臧 曷維其已.」

眞聖大王 遽飛睿札 徵赴彤庭, 大師 雖猥奉王言 而寧隳祖業, 以修途多梗 附表固辭, 可謂天外鶴聲 早達於雞林之畔 人中龍德 難邀於象闕之旁. □□」 因避煙塵 欻離雲水, 投溟州而駐足 託山寺以栖心, 千里乂安 一方消息. 無何遠聞 金海西有福林, 忽別此山 言歸南界 及乎達於進禮 暫以踟躕 爰有□□」進禮城諸軍事 金律熙, 慕道情深 聞風志切 候於境外 迎入城中, 仍葺精廬 諮留法, 猶如孤兒之逢慈父 衆病之遇毉王.」 孝恭大王 特遣政法大德如奐 逈降綸言 遙祈法力, 佐紫泥而 兼送薰鉢 憑專介而 俾披信心. 其國主歸依 時人敬仰 皆此類也, 豈惟肉身菩薩 遠蒙聖□□」尊 靑眼律師 頻感群賢之重而已哉. 此寺 雖地連山脈 而門倚墻根, 大師以水石探奇 煙霞選勝 遊西岫 梟唳舊墟, 豈謂果宜大士之情 深愜神人□□,」 所以 刱修茅舍 方止  輿 改號鳳林 重開禪宇. 先是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 明義將軍 金仁匡 鯉庭稟訓 龍闕馳誠, 歸仰禪門 助修寶所. 大師心憐□□」 意有終焉, 高演玄宗 廣揚佛道. 寡人袨膺丕構 嗣統洪基, 欲資安遠之風 期致禹湯之運. 聞大師 時尊天下 獨步海隅, 久栖北岳之陰 潛授東山之法. □□」興輪寺 上座 釋彦琳 中事省 內養 金文式, 卑辭厚禮 至切嘉招. 大師謂衆云, 雖在深山 屬於率土, 況因付囑 難拒王臣. 貞明四年 冬十月 忽出松門 屆于□」 輦至十一月 四日. 寡人 整其冕服 稍淨襟懷 延入蘂宮 敬邀蘭殿, 特表師資之禮 恭申鑽仰之儀. 大師高拂毳衣 直昇繩榻 說理國安民之術 敷歸僧□□」之方. 寡人喜仰慈顔 親聞妙旨 感激而重重避席 忻歡而一一書紳. 此日 隨大師 上殿者 八十人, 徒中有上足 景質禪師 仰扣鍾鳴 潛廻鏡智. 大師 □□」撞擊 聲在舂容 曉日之暎群山 淸風之和萬籟, 縱容演法 偏超空有之邊 慷慨譚禪 實出境塵之表, 莫知其極 誰識其端. 翌日遂命百寮 詣於所止 同列稱□,」 仍差高品 上尊號曰 法膺大師, 此則盡爲師表 常仰德尊 恭著鴻名 以光玄敎.

其後 大師已歸舊隱 重啓芳筵 諭諸學於道灰, 俱傳法要 援群生於途炭. □」  慈風則必. 忽患微痾 猶多羸色, 大衆 疑入兩楹之夢 預含雙樹之悲. 龍德三年 四月 二十四日 詰旦 告衆曰, 諸法皆空 萬緣俱寂 言其寄世 宛若行雲, 汝等 勤以住持 愼無悲喪. 右脅而臥 示滅於鳳林禪堂, 俗年七十 僧臘五十. 於時 天色氛氳 日光慘澹 山崩川竭 草悴樹枯 山禽於是苦啼 野獸以之悲吼. 門人等 號奉色身 假 于寺之北嶺. 寡人忽聆遷化 身惻慟情, 仍遣 昭玄僧榮會法師 先令吊祭. 至于三七 特差中使 賚送賻資, 又以贈諡 眞鏡大師 塔名寶月凌空之塔. 大師 天資惠悟 嶽降精靈 懸慈鏡於靈臺 掛戒珠於識宇, 於是 隨方弘化 逐境示慈 知無不爲 綽有餘裕 至於終世 心牢無瞥起之情 雖在片時 體正絶塵勞之染. 傳法弟子 景質禪師等 五百餘人 皆傳心印 各保髻珠, 俱栖寶塔之旁 共守禪林之 遠陳行狀 請勒貞珉. 寡人 才謝凌雲 學非對□ 柔翰敢揚其禪德 菲詞希播其道風, 遽裁熊耳之銘 焉慙梁武 追製天台之偈 不媿隋皇.


其詞云,

釋迦法付大龜氏,  千劫流轉示後來,  心滅法流何日絶,  道存人去幾時廻

偉矣哲人憂迷路,  生於浮世降聖胎,  慾海波高橫一葦,  邪山路險軫三材

方忻宴坐銀花發,  忽歎泥洹寶月摧,  霜霑鶴樹悲長悴,  霧暗鷄山待一開.


龍德四年 歲次甲申 四月一日建 門下僧 性林刊字



(陰記)

(마멸)金魚袋崔仁渷篆」(마멸)假威禪伯掃魔」(마멸)大師則其人」(마멸)略而高扶王室」 (마멸)而假寐夢得休」(마멸)有童心齠齔而」(마멸)□讓美俾踐僧」(마멸)□□岩承嗣於」 (마멸)信寂然無語因」(마멸)而仰止高山探」(마멸)由西去貧道已」(마멸)邀於邃闕之傍」 (마멸)暫以踟躕爰有」(마멸)身菩薩遠蒙聖」(마멸)之情深愜神人」(마멸)所大師心憐」(마멸)潛授東山之法」(마멸)月忽出松門屆于」(마멸)民之術敷歸僧」(마멸)廻鏡智大師」(마멸)詣於所止同列稱」(마멸)要援群生於塗炭」(마멸)寄世宛若行雲汝等」(마멸)獸以之悲吼門人等」(마멸)大師塔名寶月凌空」(마멸)之情雖在片時體正」(마멸)學非對曰柔翰敢揚」(마멸)險軫三材方忻宴坐」(마멸)性林刊字」(마멸)□已閏七月  日重竪北刊


 

【해석문】


고 진경대사의 비

유당 신라국 고국사 시진경대사 보월능공지탑 비명 및 서


문하승 행기가 교를 받들어 쓰고 문인인 조청대부 전수집사시랑 사자금어대 崔仁渷이 전액을 쓰고 내가 짓는다.


내가 듣건대, 높고 높은 하늘의 형상은 광활함을 차지하는 이름만이 아니고, 두텁고 두터운 땅의 모습은 깊고 그윽함을 칭하는 것만은 아니다. 저 禪에 깃든 上士와 법을 깨친 眞人이 같을 수야 있겠는가. 그러한 사람만이 四大를 초월하여 즐거이 노닐며 경치를 구경하고 三端을 피하여 한가로이 거닐며 달을 희롱하다가, 마침내 호가호위하는 禪伯으로 하여금 혼란한 시절에 魔□를 일소하게 하고, 법령을 쫓는 法王으로 하여금 태평한 시절에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돕게 하여, 자비의 구름이 다시 드리우고 佛日이 거듭 빛나며, 外道를 모두 물리쳐 하늘 끝까지 따르고 복종하며, 비밀스런 印을 가지고서 심오한 뜻을 발휘하며, 그윽한 그물을 들어서 진실한 종지를 널리 드러내게 할 수 있으니, 오직 우리 대사가 바로 그 사람이다.

대사의 이름은 심희요, 속성은 김씨이니, 그 선조는 임나의 왕족이다. 풀에서 성스러운 가지를 뽑았으나 이웃나라의 침략에 괴로워하다가 우리 나라에 투항하였다. 먼 조상인 흥무대왕은 鼇山의 정기를 타고, 바다의 정기에 올라서, 문신의 길조를 잡아 재상의 뜰에 나왔고, 무신의 지략을 잡아 왕실을 높이 부양하였으며, 평생토록 □□하여 두 적이 영원히 안정되고 兎郡의 사람들이 능히 세 조정을 받들어 멀리 辰韓의 풍속을 어루만졌다.

아버지 盃相의 道는 노장사상을 높였고, 뜻은 松喬를 흠모하였으며, 물과 구름이 비록 그 한가로움을 내버려둔다 할지라도 朝野는 그가 벼슬을 귀히 여기지 않음을 아쉬워하였다. 어머니 박씨가 일찍이 앉은 채로 선잠이 들었다가 꿈에 休□를 얻었다. 나중에 미루어 생각해보고는 깜짝 놀라 임신을 하였다. 곧 냄새나는 음식을 끊고 그 몸과 마음을 비웠으며, 가만히 그윽한 신령에 감응하여 지혜로운 아들을 낳기를 빌었다. 大中 7년(853)12월 10일에 태어났다. 대사는 기이한 자태가 넉넉히 드러났으며 신비한 색이 원융하게 밝았다. 나이 어려서도 철부지 같은 마음은 없었으며, 치아를 가는 7,8세의 나이임에도 佛事를 □□하였다. 모래를 쌓아 탑을 만들고, 잎을 따서 향을 바쳤다. 아홉 살에 惠目山으로 곧장 가서 圓鑑大師를 알현하니, 대사는 지혜의 싹이 있음을 알고 祗樹(절)에 머물 것을 허락하였다.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마음은 오히려 정성을 다하였다. 부지런히 애쓰는 데는 高鳳도 공을 미루고 민첩함에는 揚烏도 아름다움을 양보할 만 하였다. 僧□를 밟도록 하고 법당을 떠났다. 咸通 9년(868) 스승이 병에 걸려 대사를 불러 말하기를 ꡒ이 법은 본래 西天에서 동쪽으로 왔으며, 중국에서 꽃이 한 번 피자 여섯 잎이 번성하였다. 대대로 서로 전승하여 끊임이 없도록 하였다. 내가 지난 번에 중국에 가서 일찍이 百巖을 사사하였는데 백암은 江西를 이었고 강서는 南嶽을 이었으니, 남악은 곧 曺溪의 아들이며 嵩嶺의 현손이다. 비록 袈裟는 전하지 않았으나 心印은 서로 주었다. 멀리 如來의 가르침을 잇고 迦葉의 종지를 열었다. 그대는 마음의 등불을 전하라. 나는 法信을 부촉하노라.ꡓ하고는 아무 말 없이  涅槃에 들었다. 대사는 눈으로 이별함에 슬픔이 깊고 마음으로 사별함에 수심이 간절하였다. 스승을 잃은 애통함은 더 쌓이고 배움이 끊긴 근심은 실로 더하였다. 19세에 具足戒를 받았다. 이윽고 계율을 지킴에 마음이 들떠서 정처없이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 다녔으니, 산 넘고 물 건너 여러 지방을 떠돌아 다니는 것이 어찌 수고롭지 않겠는가. 일 따라 돌아다녔다. 명산을 찾아 고산을 우러러 보고, □□을 더듬어 절경까지 찾았다. 어떤 사람이 묻기를, ꡒ대사께서는 비록 이 땅을 돌아다니며 수행하여 두루 玄關을 뵈었으나 다른 나라까지 순례하여 모름지기 큰 선비를 뵙고 공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ꡓ하였다. 대사가 대답하기를 ꡒ달마가 법을 부촉하고 惠可가 마음을 전한 이래로 선종이 동쪽으로 전해졌거늘 배우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서쪽으로 가리오. 나는 이미 惠目을 참알하였고 바야흐로 꽃다운 티끌을 접하였으니, 어찌 뗏목을 버린 마음을 가지고 뗏목을  탈 뜻을 근심하리오?ꡓ하였다. 文德 초년부터 乾寧 말년 사이에 먼저 松溪에 자리를 잡자, 학인들이 빗방울처럼 모여 들었으며, 잠시 설악에 머물자 禪客들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어디 간들 숨어 지낼 수 있었을 것이며, 어찌 오직 그것 뿐이겠는가!

眞聖大王이 급히 편지를 보내어 궁전으로 불렀다. 대사는 비록 임금의 말씀을 외람되이 받들기는 하였으나 祖師의 業을 어찌 중단하리오. 길이 험하다는 이유로 표를 올리고 굳이 사양하였으니 가히 하늘 밖 학의 소리는 鷄林의 경계에 빨리 닿지만, 사람 가운데의 龍德을 대궐 문 옆에서 구하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도다. 대사는 세속을 피하여 홀연히 운수처럼 떠나 溟洲로 가서 머무르며, 산사에 의지하여 마음을 깃들이니, 천리가 잘 다스려져 편안하다. 한쪽은 사라짐과 소생함이 있다.

얼마 안되어 멀리 金海 서쩍에 福林 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문득 이 산을 떠났다. 그 소문이 남쪽 경계에 미치고 進禮에 이르러 잠시 머뭇거렸다. 이에 □□進禮城諸軍事 金律熙가 대사의 도를 사모하는 정이 깊고 가르침을 듣고자하는 뜻이 간절하여 경계 밖에서 기다리다가 맞이하여 성안으로 들어갔다. 이내 절을 수리하여 법의 가르침을 자문하는 것이 마치 고아가 자애로운 아버지를 만난 듯하며, 병자가 훌륭한 의사를 만난 듯하였다. 孝恭大王이 특별히 정법전의 대덕인 如奐을 보내어 멀리 조서를 내리고 법력을 빌었다. 붉은 인주(紫泥)를 사용하고 겸하여 향기로운 그릇을 보냈으며, 특별한 사자를 보내어 信心을 열게 하였다.

그 나라의 임금이 귀의하니 사람들이 공경하고 우러름이 모두 이러하였다. 어찌 肉身菩薩만이 멀리 聖□의 존중함을 입고, 靑眼律師만이 여러 어진이들의 존중함을 자주 입으리오. 이 절은 비록 지세가 산맥과 이어지고 문이 담장 뿌리에 의지하였으나, 대사는 수석이 기이하고 풍광이 빼어나며, 준마가 서쪽 봉우리에서 노닐고 올빼미가 옛터에서 운다고 하였으니 바로 大士의 정에 과연 마땅하며 신인의 □에 깊이 맞는다고 하겠다. 그래서 띠집을 새로 수리하고 바야흐로 가마를 멈추고, 이름을 鳳林 이라 고치고 선방을 중건하였다.

이 보다 앞서 知金海府進禮城諸軍事 明義將軍 金仁匡은 가정에서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대궐에서 정성을 다하였으며, 선문에 귀의하여 숭앙하고 三寶의 집을 돕고 수리하였다.

대사는 마음에 가련히 □□하고 여생을 보낼 뜻을 가졌다. 현묘한 종지를 높이 강연하고 부처의 도를 널리 선양하였다. 과인이 삼가 대업을 받고 큰 기틀을 이어 다스림에 道安과 慧遠의 도를 힘입어 禹湯의 운세를 누리고자 하였다. 듣건대 대사는 당시 천하 사람들의 존숭을 받고 海隅(신라)에서 독보적 존재요, 북악의 북쪽에 오래도록 거처하며 東山의 법을 가만히 전수했다고 한다. 흥륜사 상좌 釋彦琳과 중사성 내양 김문식을 보내어 겸손한 말과 두터운 예로 간절히 초청하였다. 대사가 무리들에게 이르기를 ꡒ비록 깊은 산속이나 이 역시 임금의 땅이요, 하물며 (석가)의 부촉도 있으니 임금의 사자를 거절하기는 어렵다ꡓ하였다. 貞明 4년(918) 겨울 10월에 문득 산문을 나서서 □에 이르렀다. 가마가 11월 4일에 도착하였다. 과인은 면류관과 예복을 정돈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예궁으로 인도하고 난전에서 공경히 만났으며, 특별히 스승과 제자의 예를 표하고 공손히 숭앙하는 자세를 나타내었다. 대사는 법복을 높이 휘날리며 법좌에 올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편안케 할 술수를 설하고, 승려에 귀의하고 □□에 □□할 방책을 말하였다. 과인은 기쁜 마음으로 대사의 얼굴을 우러르고 오묘한 종지를 친히 들으매, 감격스러워 거듭 자리를 피하고 기쁨에 일일이 기록하였다. 이날 대사를 따라 궁궐에 오른 자가 80인이니 무리 가운데 上足 景質禪師가 있어 우러러 종과 같은 맑음을 두드리고 그윽히 거울과 같은 지혜를 품었다. 대사가 □□를 치매 소리가 조용하였다. 새벽의 해는 온 산에 비치고 맑은 바람에 온갖 만물의 소리가 화답하였다. 조용히 법을 설하매 세속의 바깥을 진실로 벗어났으니, 누가 그 끝을 알았으리오. 다음 날 마침내 모든 관료들에게 명하여 대사가 머물고 있는 곳으로 나아가 나란히 □을 칭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벼슬이 높은 사람을 보내어 法膺大師라 하였으니, 이는 곧 남의 모범이 될만 하였다. 이는 항상 덕을 숭앙하고 삼가 큰 이름을 드러내어 심오한 가르침을 빛나게 함이라 하였다. 그 후에 대사는 이미 예전에 은거하던 곳으로 돌아와 향기로운 가르침을 거듭 열어서 죽은 도에 빠진 여러 학인들을 깨우쳤으며, 법의 요체를 갖추어 전하여 도탄에 빠진 중생들을 구원하였다. 자애로운 바람을 보시함은 필연적이다. 갑자기 가벼운 병에 걸렸는데도 마치 피로한 기색이 완연한 듯하매, 무리들은 돌아가실까 의아하여 미리 죽음의 슬픔을 머금었다. 龍德 3년(923) 4월 24일 새벽에 무리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ꡒ모든 법은 다 空하며 온갖 인연은 함께 고요하다. 말하자면 세상에 의지한 셈이니 흐르는 구름과 꼭 같도다. 너희는 힘써 머무르되 삼가하고 슬피 우지마라.ꡓ하고는 오른 쪽으로 누워 봉림사 선방에서 입적하니 세속의 나이로는 70이요, 승려 나이로는 50이었다. 이 때에 하늘색이 왕성하게 오르고 햇빛이 참담하였으며, 산이 무너지고 내가 마르며 풀이 초췌하고 나무가 말랐다. 산짐승이 이에 슬피 울고 들짐승이 슬피 울었다. 문인들은 통곡하며 시신을 받들어 절의 북쪽 언덕에 임시로 장사지냈다. 과인은 갑자기 입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애통해 하였다. 인하여 昭玄僧 榮會法師를 보내어 먼저 조문하고 제사하게 하였다.

21일째에 이르러 특별히 中使를 보내어 장례용 물자를 주고 또 시호를 眞鏡大師라 추증하고 탑 이름을 寶月凌空之塔 이라 하였다. 대사는 타고난 자질로 지혜로이 깨닫고 산악이 정령을 내려서 자비의 거울을 靈臺에 걸고 계율의 구슬을 認識의 집에 걸었다. 이에 사방으로 교화를 넓히고 지경마다 자비로움을 보였으니, 알고서도 하지 않음이 없어 넉넉히 여유가 있었다. 세상을 마칠 때까지 마음이 단단하여 잠시라도 번뇌가 일어남이 없었고, 비록 잠깐이라도 몸이 단정하여 세속의 번뇌에 물들지 않았다. 법을 전하는 제자인  景質禪師 등 500여인은 모두 心印을 전하매 각각 계주를 보존하였다. 함께 보탑 곁에 머무르며 같이 禪林의 고요함을 지켰다. 멀리서 대사의 행장을 기록하여 비석에 새길 것을 요청해왔다. 과인의 재주는 속기를 벗어나지 못하였고 배움은 □을 상대할 수 없으나, 유약한 붓으로 그 선덕을 감히 드날리고 너절한 말로 그 도풍을 널리 펴고자 하노라. 熊耳의 명문을 선뜻 재단하는데 어찌 梁 武帝를 부끄러워 하리오. 天台의 게송을 추억하며 짓는데 수나라 황제도 부끄럽지 않다.

詞에 이르기를

석가가 가섭에게 법을 부촉하되, 오래도록 떠돌다가 나중에 오리라.

마음은 멸한데 법 흐름 언제 끊고, 도 있거늘 떠난 사람 언제 돌아오리.

위대하도다 철인은 미로를 근심하여 閻浮提 성모의 태내에 태어났도다

바다의 높은 파도 일엽편주로 건너고, 가야산 험한 길 三才로 돌고자.

흔연히 자리 앉으매 은색 꽃 피고, 문득 열반을 탄식하매 寶月은 사라져.

서리 젖은 鶴林에 슬픔은 길고, 鷄山의 짙은 안개 한번 걷히길 기다려. 龍德4년 甲申年 4월 1일에 세우고 문하승 性林이 새기다.


 <금당지 추정지>

 <점점 대나무가 들어오고 있다>

 

 

 <봉림사지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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