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무염국사(無染國師)의 영정(影幀)과 성흥사 느티나무

천부인권 2009. 3. 31. 08:13

 

  <무염국사(無染國師) 영정(影幀)>

 

무염국사(無染國師)의 영정(影幀)과 성흥사 느티나무


성흥사에서 보존하고  있는 무염국사(無染國師)의 영정(影幀)은 고종 27년(1890)에 화주(化主)스님이 그린 것으로 영정은 가로 1.5m 세로 2m의 비단에 체색으로 그렸는데 무염국사(無染國師)의 온화한 진영을 매우 섬세한 필체로 그려놓고 있다.


무염국사의 속성은 김씨이며,호를 무주(無住)라 하고,신라 무열왕의 8대손이 된다. 13세에 입산하여 부석사(浮石寺)의 석징(釋澄)에게 화엄경(華嚴經)을 익히고 당나라에 가서 수도하고 돌아왔다.


귀국후 웅천의 오합사(烏合寺)에 머물면서 성주산문(聖住山門)의 개조(開祖)가 되니 전단산의 우곡사(牛谷寺)(832년)와 구천동의 성흥사(聖興寺)(833년)등 수많은 절을 지었다고 전한다. 함안 장춘사(832년)도 우곡사를 건립한 년도와 같은 해에 창건했다고 한다. 1년에 창원과 함안의 두곳을 동시에 건립한다는 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애장왕2년(801)에 나서 진성여왕(眞聖女王)2년(888)에 이승의 생을 마쳤다.

 

 

성흥사(聖興寺) 옆에 수령 600여년의 느티나무 한그루가 서있다.


나무 둘레가 4m 높이 약20m의 이 느티나무는 담장밖에 밀려나서 석축단위에 서 있는 바 여름철엔 그 무성한 그늘이 주변 일대를 덮는다. 이 나무가 여기에 심어진 사유는 모르나 성흥사의 이건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뿐이다. 아뭏튼 여름철에 성흥사로 찾아드는 불신도들에게는 좋은 휴식처이고, 승려들에게도 더없는 휴식처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