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도미(都彌)정승 이야기

천부인권 2009. 4. 8. 23:12

 

  <묘가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

 

“웅동면 청천리(晴川里)의 뒷산 우거진 송림(松林)속에 높이 약2m 주위 15m 가량 되는 큰 고분 하나가 있다. 이 고분 앞에 있는 비석에는 백제정승 도미지묘(百濟政丞 都彌之墓) 배정렬부인(配貞烈夫人)이라 적혀있다.”라는 창원군지를 보고 청천리를 가보니 무덤이 없고 횟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전에 그 자리에 있었지만 길을 내면서 사라졌다고 말씀 하시며, 아마도 후손들이 묘를 팔고 이전을 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신다.”


청천리 마을위에서 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바라본 안골포는 여전히 아름답다. 그리고 백제가 창원지역에 진출한 것이 도미정승의 이야기로 증명되는 것이다.

 <저멀리 거제도가 보인다>

 

도미(都彌)정승 이야기(1)


도미(都彌)는 백제 제4대 개루왕(蓋蔞王) 때의 사람이다. 그의 벼슬이 실제로 정승을 지냈는지는 기록이 전하지 않아 알 수가 없다. 다만 삼국사기에서 도미의 기록이 있으니 옮겨보기로 한다.


도미는 서민이었으나 매우 의리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의 아내는 미인인데다 절개가 굳기로 널리 소문이 나 있었다. 하루는 개루왕이 이 소문을 듣고 도미를 불러 말하기를 "무릇 부덕(婦德)은 그 의뜸이 정절인데, 만약 무인지경에서 교묘한 말로서 유혹 할진대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여자는 없을 것이다." 하니 도미가 대답하기를 "사람의 마음은 측량할 길이 없다고 하지만 소인의처는 결코 두 낭군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고 하였다.


왕은 이를 시험하기 위해 도미를 붙잡아 둔 다음, 신하 한사람을 왕의 복색으로 변장시켜 밤에 도미의집으로 보냈다. 거짓왕은 도미의 아내더러 도미와 오늘 낮에 도박을 하여 이겼기 때문에 그 댓가로 짐(朕)이 그대를 차지하게 되었노라고 말하면서 급탈 하려고 하니 도미의 아내가 말하기를, "임금님이 거짓말을 할리 없으니 어찌 그 영에 따르지 않으리오만은 잠시 방에서 기다려 주시면 옷을 갈아입고 돌아와서 영을 받들겠나이다." 하고 밖을 나가 여종을 대신 차려서 들여보냈다.


왕은 후에 속았음을 알고 크게 노하여 도미의 눈을 뽑은 다음 조각배에 실어서 바다로 흘려보내고 이번에는 직접 도미의 처를 겁탈 하려고 하니 그녀는 또 월경중이라고 속이고 그 자리를 빠져 강변에 나왔다. 그러나 배가없어 대성통곡을 하는데 어디선가 조각배 하나가 파도에 밀려서 그녀의 앞에 왔으므로 그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가서 남편을 만났다.


그 뒤 도미부부는 풀뿌리로 연명하다 고구려로 건너가서 여생을 마쳤다. 고 삼국사기는 전한다 그러나 웅동지방에 따로 전하는 설화는 다른 것은 비슷하나 결론이 완전히 달라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바닷가에서 바라본 도미정승 묘가 있었던 곳엔 소나무가 그 흔적을 말해준다>

 

도미(都彌)정승 이야기(2)


백제의 개루왕은 성품이 방탕하여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지육림(酒池肉林)속에 빠져 지냈다. 자연히 간신의 무리가 들끓었고 국력은 날로 쇠퇴하여 갔다. 정승 도미는 기울어가는 국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왕에게 나아가 간(諫)하였으나 번번히 뜻을 이루지 못하고 왕과 간신배들의 미움을 사게 되었다.


한편 도미부인은 백제에서 제일가는 미인이었고, 두 사람의 금슬 또한 모두가 부러워 할 지경으로 좋았다. 이러한 소문이 호색한인 개루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어느 날 왕은 도미정승을 대궐 안에 붙들어 놓은 채 몇 사람의 측근을 데리고 도미정승의 집으로 갔다. 왕의 눈에 비친 도미정승의 아내는 듣던 대로 천하절색이라, 왕이 음심이 발동하였다. 왕은 즉시 시침할 것을 명령하였다. 당시 백제의 국법은 왕명을 거역하는 자, 일가멸족의 중벌로 다스리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어느 영이라서 거절 할 것인가.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고 그녀에게 하나의 기지가 떠올랐으니, 왕에게 방안의 불을 끄게 한 다음 밖으로 나와서 급히 여종을 단장시켜 시침을 들게 하였다. 어둠 속에서 여종을 도미부인으로 알고 하룻밤을 밝혔으나 날이 밝자 속은 것을 알고 크게 분노 하였다.


왕은 도미정승의 두 눈을 뽑아 버리고 조각배에 태워서 백마강에 띄워 버렸다. 조각배는 흘러 서해바다에 이르자 때마침 불어오는 북서풍에 실려 남쪽으로 떠내려갔다. 그러나 이 배는 다시 해상에서 조류를 만나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천성도(泉城島)의 해안으로 밀려오게 되었는데 마침 이곳을 지나던 어부를 만나 구출되었다.


한편 도미부인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안타까움으로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 갔다. 그녀는 마침내 남편을 찾아 백마강에 조각배를 띄웠으며, 이 애끓는 여인의 단심(丹心)을 하늘이 도왔음일까. 그녀가 탄 배도 역시 같은 경로를 거쳐서 머나먼 남쪽 땅 천성도(泉城島) 해안에 표착하게 되었다. 도미정승 부부는 여기에서 기적적으로 해후하여 마을 사람의 도움으로 오래오래 살다가 그들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합장(合葬)을 하였다 한다.


이 이야기는 웅동지역에서만 구전되어 오는 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