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양루라는 이름으로 음식점을 하고 있는 마당에 주차를 하고, 악양루 입구로 들어서면, 사람한명 겨우 지날 수 있는 바위 틈 사이로 길이 나있다.
함안천과 남강이 만나는 합수지점의 낭떠러지 절벽 길을 따라 걸어가니 얼마지 않아 절벽 위에 정자가 보인다. 정자위에서 바라보는 법수면의 들판과 남강의 물결은 한 폭의 그림이 되어 사람의 마음까지 뻥~ 뚫어 주는 것 같았다.
악양루(岳陽樓)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90호
소재지 : 함안군 대산면 서촌리 산120
악양마을 서쪽 절벽에 있는 정자로 함안천과 남강이 합수되는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누각에서 보면 법수면의 넓은 들판과 굽이쳐 흐르는 남강의 제방이 한눈에 들어와 그 경관이 중국의 명승지 악양에 비길만하다고 하여 “악양루”라 지었다 전한다. 누각은 안씨 문중의 소유이고 관리도 하고 있다.
조선 철종8년(1857)에 세운 것으로 정면3칸, 측면2칸의 규모이고, 옆에서 볼 때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만들어 졌다. 지금의 것은 한국전쟁 후 1963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옛날에는 의두헌(倚斗軒)이라는 현판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없고 현재 “악양루(岳陽樓)”라 쓰인 현판은 청남 오제봉(吳齋峯)의 글이라 한다.
악양루에서 50m 정도 나오면 길 좌측에 “처녀 배사공 노래비”가 서 있다. 앞면은 노래가 적혀 있고,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우게 되는 일화가 적혀 있다.
<처녀 배사공 노래비>
노래비를 세우면서
1953년 9월 유랑극단 단장인 거 윤부길(가수 윤향기, 윤복희의 부친)씨가 6.25 피난시절을 끝내고 서울로 가면서 함안군 가야장에서 공연을 마치고 대산장으로 가던 중 여기 대산면 악약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당시 이곳 나루터에는 군에 입대한 후 소식이 끊긴 박기준(6.26 전쟁 중 전사)씨를 대신하여 여동생 등 두쳐녀가 교대로 나룻배의 노를 저어 길손을 건네주며 오빠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애절한 사연을 들은 윤부길씨가 “낙동강 강바람이...” 라는 노랫말을 작사. 한복남 작곡. 황경자의 노래로 1959년에 ‘처녀뱃사공’이 발표되어 국민 애창곡으로 널리 불러지게 되었으며 그 유래를 담아 이 노래비를 건립하게 되었다.
'역사의 기록 > 문화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월산 이야기 (0) | 2009.04.08 |
---|---|
도미(都彌)정승 이야기 (0) | 2009.04.08 |
함안의 문화재-반구정과 합강정 (0) | 2009.04.06 |
함안의 문화재를 찾아(산인면-고려동) (0) | 2009.04.06 |
함안의 문화재 장춘사를 찾아(칠북편) (0) | 2009.04.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