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중교리 석조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와 호암생가

천부인권 2009. 4. 16. 09:03

 

 

 <아름다운 흙담장은 호암의 별장이라고 한다.>

 

마창기술봉사단의 봉사활동장소가 의령군 용덕면 운곡리로 정해져 활동지에 대한 정보를 살피다가 조금 더 지나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가 있는 정곡초등학교가 있는 것을 알았다. 이번 기회에 사진이라도 찍어와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함께 봉사활동을 갈 친구가 돌아올 때 볼일이 생겨 자동차를 가져간다고 한다. 그래서 출발을 조금 빨리하여 그 곳을 미리가보기로 했다.

그 마을이 호암 이병철선생의 생가(중교리 723)가 있는 마을 이었다. 내친김에 이른 아침이었지만 그곳을 관리하시는 분의 양해를 얻어 잠시 구경을 하고 정곡초등학교를 찾아가니 뜻밖에 고등학교 동기생을 여기서 만났다. “오늘 옛 친구들과 등산을 하기로 하여 왔다”면서 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별장의 담이 끝나는 곳에 생가가 있다.>

 

 

<우물과 4칸의 팔작지붕 사랑채>

 

 

<다른 각도에서는 안채가 보인다.>

 

 

 

중교리 석조여래좌상(中橋里 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정곡초등학교)


이곳에 있는 구의 불상은 모두 1925년에 정곡면 석곡리 미륵골의 옛 절터에서 발견되어 옮겨온 것으로, 발견 당시 일부가 훼손되어 있던 것을 다시 복원하였다.

불상 모두 머리 위에 곱슬(螺髮)이 많은 상투(肉髻)가 뚜렷하다. 얼굴 가득 머금은 인자한 웃음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왼쪽 어깨에 걸친(偏袒左肩) 옷자락(法衣)이 단정하게 표현되었으며, 주름도 촘촘하게 조각되어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두 불상 다 8각형의 받침대 위에 앉은 모습이지만, 광배는 1구의 불상에만 남아 있다. 손 모양은 각각 다른데, 작은 불상은 부처가 악마를 누르고 깨달음을 이루는 순간을 상징한다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다. 큰 불상은 왼손 위에 오른 손을 포개고 엄지를 맞댄 모습으로 부처가 깊은 참선의 경지에 들어갔음 형상화 한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는 석가모이불이다. 불상의 손 모양 모두 가부좌(跏趺坐)를 한 불상에서만 볼 수 있다. 불상 모두 통일신라의 석불 양식을 계승한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중교리 석조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

 

“2000년도까지 좌우에 두개의 불상이 쌍으로 있었지만 하나를 도둑이 훔쳐가 현재는 하나의 불상만 남아있다”고 정곡초등학교를 졸업한 안씨(49세) 성을 가진 분이 말했다.

 

 

 <중교리 석조여래좌상 뒤쪽 모습>

 

 

<중교리 석조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