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구계리 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호)와 구계임도 비

천부인권 2009. 4. 16. 22:31

 

  <석조여래좌상 찾는 지도>

 

법화암 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수지가 우측계곡 아래 보이고 모퉁이를 돌면 우측에는 “구계리 석조여래좌상”이, 길 좌측에는 “구계리 임도계통 기념탑”이 나온다.

 <구계리 임도계통 기념탑비>

 

임도계통 기념탑 안내판에는「1939년 큰 가뭄으로 발생한 이재민(罹災民)의 궁핍한 생활고가 극에 달하자 하지호(河之浩)씨가 청원하여 당시 창녕군수인 “야마모도 도라오”가 도지사(야마자와요리 사브로우)의 재가를 얻어 일만이천구백팔십오원의 공사금으로 도로계착공사를 하여 구계부락민의 많은 편의와 임산물 유통에 도움이 되었다.」고 기록한다.

 <구계리 석조여래좌상 각>

 

영산 구계리 석조여래좌상(九溪里 石造如來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호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구계리 1264-4


이 불상은 광배와 함께 하나의 돌로 조각되어 있다. 이곳 영산면 영축산에 있었던 적조사(寂照寺)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해질 뿐 자세한 내력을 알 수 없다. 불상과 광배는 전반적으로 마멸이 심해 원형을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머리 부분의 상투모양과 얼굴에 비해 크게 조각된 코가 특징적으로 드러난다. 오른쪽 어깨는 비교적 각이 뚜렷한 반면, 왼쪽 어깨는 오른쪽 어깨에 비하여 넓고 아래로 조금 처져 있다. 손은 훼손이 심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리 부분은 폭이 좁은 편이며, 양 무릎의 높이가 일정하지가 않다. 불상이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처진 느낌을 주고 있다. 불상은 입체감 없이 간략화 된 신체의 표현 등에서 소박한 지방적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체적인 조형 양식으로 볼 때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되는 작품이다. 불상의 높이는 1.34m, 폭은 0.7m이다.

 <석조여래좌상의 얼굴부분>

  <석조여래좌상의 옆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