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천부인권 2009. 4. 17. 15:33

 

  <700여m 산을 오르면 용선대 표지판이 나오고 마지막 바위를 오르면>

  <아찔한 바위 절벽 위에 관룡사를 바라보며 하늘을 이고 있는 듯한 불상이 앉아 있다.>

  <이 좁은 공간에 이런 큰 불상을 올려 놓은 것은 대단한 기술이 필요 했을 것이며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이런일을 했을까?>

 <저 눈이 머무는 곳에 무엇이 있을까?>  

 

관룡사 용선대 석조석가여래좌상 (觀龍寺 龍船臺 石造釋迦如來坐像)

보물 제295호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산(739.7m)정상 부근의 수십 길 낭떠러지 위에 홀로 앉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전체 높이 2.98m, 불신 높이 1.81m, 대좌 높이 1.17m이다. 높은 대좌위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앉았는데 광배는 없어졌다. 머리에는 둥근 육계(肉髻)와 나발(螺髮)이 올려졌고, 사각형 얼굴이지만 둥근 맛이 있다. 조금 뜬 길다란 눈, 짧고 넓적한 코, 입가에 미소를 띤 온화한 인상이다. 귀는 어깨까지 내려오고, 짧은 목에 옆으로 그은 삼도(三道)는 가슴에도 새겨있다. 머리에 비해 좁은 어깨는 조금 위축된 자세지만 안정감이 있다. 다리를 틀은 하체는 묵지하여 안정감이 있다. 불상의 뒤까지 표현된 옷 주름은 규칙적이면서 평평하게 표현되었다. 대좌는 세 부분으로 높고 아름답게 만들어져, 연꽃봉오리 모양의 상좌, 팔각형의 중좌, 두 겹의 연꽃잎을 깐 하좌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8세기의 불상에도 나타나지만, 위축된 자세와 사실성이 줄어든 조각수법 등에서 볼 때, 8세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9세기 이후에 형식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바로 뒤가 절벽인 것으로 보아 불상 위에 건물은 없었던 듯하며, 자리를 정하는 데에는 땅의 기운을 누르려는 신라하대의 도참사상(圖讖思想)이 작용한 듯하다.

 <이 불상을 재작한 석공은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간절한 마음의 기도에 응답을 했을까? 저 아래 굽어 보이는 세계는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