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창녕 관룡사 석장승(경상남도 민속자료 제6호)

천부인권 2009. 4. 17. 16:32

 

  

관룡사에서 내려오면서 본 모습

 

관룡사에서 120m여를 내려오다 좌측을 보면 꾀 넓은 공간이 나온다. 지금은 자동차가 올라가지만 사람들이 걸어서 올라간다면 꼭 석장승 사이로 걸었을 것이다.

 

여장승


  남장승

 

관룡사 석장승(觀龍寺 石長丞)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6호

경상남도 창녕군 옥천리 산318


장승에는 돌로 만든 석장승과 나무로 만든 목장승이 있다. 장승의 기원은 고대 성기(性器)숭배에서 나왔다거나 사찰 토지(寺田)의 표지로 이용되었다는 등 여러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장승을 지방에 따라 벅수 벅시 법시 수살목 당산할배 등으로도 불렸다. 장승은 소속과 위치에 따라 마을을 지키는 마을 장승, 사찰의 입구나 사방 경계에 세워진 사찰장승, 지역간의 경계, 성문(城門), 병영(兵營), 해창(海倉), 관로(管路) 등에 서있는 공공장승 등이 있다.


이곳 관룡사 석장승은 한 쌍으로 조성되어 절의 입구에 서 있다. 왼쪽에 서 있는 것이 남장승이고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여장승이다. 화강암으로 만든 장승은 상투와 같은 둥근 머리와 툭 튀어 나온 왕방울 눈, 주먹 코 등이 투박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만 남장승의 턱이 각진 데 비해 여장승은 부드러운 선을 유지하고 있는 차이가 있다. 두 장승은 모두 절을 지키는 수호신의 위상에 걸맞게 차이가 있다. 두 장승은 모두 절을 지키는 수호신의 위상에 걸맞게 다문 입술 사이로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민간 예술이 갖는 소박함과 친밀함도 잘 드러나 있다.


이 장승은 관룡사 소유 토지의 경계를 위한 표지(標識)이지만, 그 외에도 사찰 토지 안에서의 사냥과 어로를 금지하는 호법(護法), 절에 잡귀가 출입하는 것을 막아 주는 수호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을 보충해주는 비보(裨補) 등을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점에서 이 석장승은 불교와 민간신앙의 결합 관계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창녕 관룡사로 올라가는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