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고인돌과 회화나무

천부인권 2009. 4. 20. 09:58

 

 

  <고인돌에 새겨진 괴헌정>

 

 

사림동 79-6번지에 가보면 이 땅에 600년의 생명을 이어온 신목의 뿌리와 엉켜 유구한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선사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여러 조각으로 깨어졌으나 그 위용만은 변함없이 간직하고 있다.

 

이 고인돌에 [퇴촌 괴헌정]이란 글귀와 광무9년 을사년(1905년) 3월에 새겼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불과 7개월 후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  민족의 비극인 조선이 망하는 안타까운 해이기도 하다. 창원의집 출신인 안희상(51세)씨에 의하면 “창원의집 뒤편 야산에 있던 것을 공단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옮겨 둔 것이라고”전한다. [槐軒亭]이란 말 그대로 회화나무가 정자의 처마처럼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모습 그대로 이다.

 

회화나무는 최고의 길상목(吉祥木)으로 이 나무를 집안에 심으면 정신이 맑아지는 기운이 흘러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고 하였고 또 이 나무에는 잡귀신이 감히 범접을 못하고 좋은 기운이 모여든다고 하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매우 귀하고 신성하게 여겨 함부로 아무 곳에나 심지 못하게 하였다.


 

회화나무는 고결한 선비의 집이나 서원(書院), 절간, 대궐 같은 곳에만 심을 수 있었고 특별히 공이 많은 학자나 관리한테 임금이 상으로 내리기도 했다. 회화나무는 모든 나무 가운데서 으뜸으로 치는 신목(神木)이다.

 

역사를 보는 시각이 예전에는 세계적인 유적이나 국가적 유물들을 소중히 생각하여 그러한 것들이 가치가 있다고 보아 왔다. 그러나 요즘은 먼 곳에 있는 유적이나 유물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한 지역의 작은 유적이나 유물들이 오히려 더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이러한 내 주위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 하고자 하는 향토사학에 더 많은 가치를 두고 있다.

 

 

  <600년 된 회화나무>

 

 

 <우리마을 신문 봉림소식지에 나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