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함안 군북 어계생가(유형문화재 제159호)

천부인권 2009. 5. 8. 21:35

 

   <공터에서 본 모습>

 

“채미정”에서 좁은 시골마을 길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은행나무가 서있는 집이 우측에 보인다. 제법 넓은 공터가 있어 주차를 하고 어계생가를 향해 가면 담장 앞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계생가(漁溪生家)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경남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 592


이 건물은 조선시대 생육신(生六臣)의 한사람인 어계 조려(漁溪趙旅, 1420~1489)선생의 생가이다. 현재의 어계생가는 대문채와 원북재(院北齋)라 불리는 재실(齋室) 및 사당(祠堂)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후손들이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었고 양측에 방을 두었다. 주 건물인 원북재(院北齋)는 정면 4칸 측면2칸의 일자형 평면으로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검약하게 지어졌다. 부엌이 없는 채 대청과 침실을 둔 것으로 보아 살림집이라기보다 재실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건물 뒤편의 삼문을 통하면 사당이 위치하고 있는데 비교적 크고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당에서는 조려선생과 부인에게 올리는 향례가 행해지고 있는데, 그곳에는 국왕의 하사품인 동제향로와 그가 사용하던 죽장(竹杖)이 보관되어 있다. 어계는 벼슬을 버린 뒤 영월(寧越)에서 단종(端宗)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룬 다음 위폐를 동학사(東鶴寺)에 모시고 나서 백이산(伯夷山) 아래로 은거하였다.

 

 <원북제>

  <금은유풍>

가는 날이 장날인지 건물을 수리를 하고 있어 어수선한 모습 인지라 인증 사진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꼭 다시 방문하여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을 담아 볼 것이다.

  <원북제도 어수선하다.>

  <조묘란 현판이 있는 사당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