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너덜강 위에 세운 절 만어사(보물 제466호)

천부인권 2009. 5. 13. 10:01

 

 

 <너덜강이 펼쳐져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 만어사 삼층석탑(萬漁寺 三層石塔)을 보러 작원관지에서 네비게이션에 번지를 입력하니 11Km 쯤으로 나온다. 위성사진에서 본 것으로는 단장면 감물리가 이 산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 시간이 허락한다면 그곳까지 가볼 생각으로 차를 몰았다. 한참 산길을 올라가는데 ‘네비게이션은 목적지가 되돌아옵니다.’라고 한다. ‘초행길인데 어쩌라고!’ 위성사진을 보고 온 것이 이럴 때 어떻게 가야하는지 판단을 서게 한다. 그래서 곧장 산길을 향해 올라갔다. 아스팔트길이 끊어지고 도로확장 공사를 하고 있어 일하시는 분에게 재차 만어사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비포장 공사구간을 지나니 자동차 한대 겨우 지나는 시멘트도로가 계속 산속으로 이어져 있다.

 

 

 

  <탑에서 삼신각을 보면서>

 

 

지나는 곳곳에 너덜강이 있어 “참 돌이 흔한 산이구나!”고 생각하면서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가니 만어사(萬漁寺) 입구가 나왔다. 만어사에 도착을 하니 영화촬영지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만어사 운해를 소개한 안내판의 사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언젠가 나도 저런 사진 한 장 남겨야겠다.

산속의 절들이 다 명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너들강 위에서 시작되는 확 트인 절경을 갖춘 이런 곳은 흔치 않은 풍경이다. 일단 오늘 보러온 「만어사 삼층석탑(보물 제466호)」을 만나, 밀양시가 보유한 7개의 보물 중 네 번째를 기록으로 남기고 너덜강으로 가보았다. 돌로 두드리면 종소리가 난다고 하여 두드려 보았다. 이런 행동을 따라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란 참 호기심 많고 단순하다는 생각을 했다. 안내판에는

 

 

 

<만어사 삼층석탑>

 

 

만어사 삼층석탑(萬漁寺 三層石塔)

보물 제466호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 4


고려시대에 만어사와 함께 세워졌다고 전하는 3층석탑이다. 만어사는 삼국유사에 1181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데, 3층석탑 뒤편의 넓은 터는 조사결과 원래의 법당자리로 확인되었다. 현재의 법당은 위치를 옮긴 것이나 3층석탑은 만어사가 세워질 당시의 위치를 지키고 있다.

기단부는 고려시대 석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층 기단으로 기단이나 탑신부는 비교적 완전하나 상륜부는 없어졌다. 후대에 별개의 석재를 다듬어 보주를 얻어 상륜부를 대신하고 있다.

신라시대 석탑에 비해 조형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과 안정적인 비례를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고 적고 있다.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대웅전>

 

 

<대웅전 정면>  

 

 

 <대웅전 내부 모습>  

 

삼성각 뒤쪽에 약수터는 이름은 “만어사석간수”라 칭하는데, 정말 시원하고 맛있는 물이었다. 오는 길에 작은 물병에 몇 개나 담아왔다.

 

 

 

<삼성각>

 

그리고 삼성각 앞쪽에 있는 돌에 세긴 글씨는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으나 영(靈)자로 보인다.

 

 

 

<삼성각 앞 바위 글>

 

 

<만어사의 풍경>

 

 

밀양에서 어머니와 함께 놀러온 아이들이 있어 종각에 가서 ‘용생구자’의 셋째 “포뢰”에 대한 설명을 해주고 미륵전의 “어산불영(漁山佛影)”이 있는 곳으로 이동 했다. 그곳의 안내판에는


만어산 어산불영(萬漁山 漁山佛影)

경상남도 기념물 제152호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리16-1


어산불영은 만어사 절 앞에 펼쳐진 거대한 돌너덜 지대를 말한다. 만어사의 창건과 어산불영(漁山佛影)에 관해서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다음과 같은 전설이 실려 있다.

수로왕 때, 가락국의 옥지(玉池)라는 연못에 살고 있던 독룡(毒龍)과 이 산에 살았던 나찰녀(羅刹女)가 서로 사귀면서 뇌우와 우박을 일으켜 4년 동안 오곡의 결실을 방해하였다.

수로왕이 주술로써 이를 금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인도 쪽의 부처님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부처님은 신통력(神通力)으로 왕의 뜻을 알고 여섯 비구(比丘)와 1만의 천인(天人)을 데리고 와서 독룡(毒龍)과 나찰녀(羅刹女)를 항복시키고 가르침을 내림으로써 모든 재앙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에 수로왕은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여 이곳에 만어사라는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또 '동국여지승람'과 '택리지'에 따르면, 옛날 동해 용왕의 아들이 목숨이 다한 것을 알고 낙동강 건너에 있는 무척산(無隻山)의 신통한 스님을 찾아가 새로 살 곳을 마련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스님은 가다가 멈추는 곳이 인연이 있는 곳이라고 일러주었다. 왕자가 길을 떠나자 수많은 고기 떼가 그의 뒤를 따랐는데 왕자가 머물러 쉰 곳이 바로 이곳 만어사라고 한다. 그 뒤에 왕자는 큰 미륵돌로 바뀌었고, 수많은 고기들은 크고 작은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이 절의 미륵전 안에 있는 5m 정도의 뾰족한 자연석이 바로 용왕의 아들이 변해서 된 미륵바위라고 전해오는데 이 바위에 기원하면 아들을 얻을 수 있다 하여,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미륵전 아래에 첩첩이 깔려 있는 돌너덜의 어산불영은 고기들이 변해서 된 것이라 하여 만어석(萬漁石)이라 부르며, 두드리면 맑은 쇳소리가 나기 때문에 종석(鐘石)이라고도 부른다고 적고 있다.

 

 

 

<어산불영을 모시는 미륵전>

 

 

“어산불영(漁山佛影)”이 있었기에 이곳에 절을 지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커다란 돌이 마치 수염고래의 배 모양을 하여 신기하다고 누구나 생각을 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신앙을 만들었을 것이고, 사람들이 찾아오는 이것을 이용하여 절을 짓는다면 먹고 사는 문제는 해결 될 것이기에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은 시주를 받아 공부에 전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산불영의 정면>

 

 

<어산불영의 또다른 모습>

 

 

이곳의 스님으로부터 쉼터의 돌의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돌의자는 김수로왕의 7번째 아들이 이 돌의자에 앉아 수행을 했다.”고 하시며 돌의자에 앉아 명상을 한번 하고 가면 오랫동안 좋은 기운을 간직할 수 있으니 앉아서 느껴 보시라고 권했다.

여기서 잠깐!! 호흡이란 단 두 글자가 인간의 생사와 일생을 담고 있을 줄 누가 알고 있겠는가? 인간이 어머님 몸에서 태어나 살기 위해 처음으로 하는 행위가 “호”하고 숨을 내쉬는 것이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숨을 “흡”하고 들이 쉬면서 저승으로 가므로 “호흡”이란 이 글자가 산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수로왕의 7번째 아드님이 사용한 돌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