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울산 반구대 암각화 답사에서

천부인권 2009. 5. 15. 09:34

 

 

울산 반구대 답사에서


울산 지역 발굴현장 답사를 계기로 반구대를 찾았다. 이런 저런 핑계로 오지 못하다가 이렇게【창원문화유산해설사】과정을 통하여 오게 되니 같은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하여 더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울산암각화전시장은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333-1번지에 부지면적 8,960㎡, 건물연면적 2,025㎡로 2008. 05. 30일에 개관 하였다. 전시공간으로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실물모형 전시, 각종 문양에 대한 입체적 영상해설 시설을 설치하였고, 선사마을 생활 모습과 선사시대 사냥체험, 선사인과의 만남 등의 체험공간이 있다.

   <암각화 전시관 앞 분수>

  <영상실에서 교육을 받는 모습>

  <다이나믹한 화면으로 설명하는 곳>

  <반구대암각화 모형>

  <천전리 각석의 모형>

  <선사시대의 배를 복원한 모습>


암각화 전시관을 뒤로하고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노라면 상류 천전리 지역에서 흘러오는 태화강의 물길을 굽어보며 잘 포장된 황톳길을 걷게 된다. 아름다운 계곡 속으로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가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멋지고 웅장한 바위를 보게 되고 그 맞은편에는 ‘집청정(集淸亭)’이 자리하고 있다.

  <붉은병꽃이 있는 풍경>

   <유명한 화가의 그림속에도 나온다는 바위>

 

그 안내판에는 “집청정은 원래 고려 말 정몽주(포은, 1337-1392)선생님께서 한번 시를 쓴 후, 이름난 구역이 천고에 깊이 감추어진 것을 애석히 여긴 경주최씨 운암 최신기가 세운 정자(17c 중반)로 반구대 거북머리 형상에 해당하는 언덕이 눈앞에 마주보이고, 그 아래 맑은 대청곡의 물이 수정처럼 푸르게 펼쳐져 벗들이 강마하는 곳으로 삼았던 곳입니다.”라 고 소개한다.

그러나 이것도 세월이 오래되어 퇴락한 것을 후손들이 다시 만들어 한국의 효정신(孝精神)을 살리고자 어린이 예절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맞은편 바위 벽면에는 “반구(盤龜)”라는 굵직한 글이 새겨져 있다.

  <집청정의 모습>

  <절벽의 벽면에 새긴 글>

 

조금 아래에 반구서원(盤龜書院)이 서있고, 대청곡 물길이 굽이쳐 회룡하는 절경이 펼쳐진다. 여기서 보면 마치 산의 모양이 ‘거북이’가 물을 찾아오는 듯하다. 그 거북의 머리 가운데, 반고서원 유허비각(盤皐書院 遺墟碑閣)이 그림처럼 세워져 있다. 그 안내판에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계곡의 물소리와 숲의 푸르름이 어울어진 서원의 모습>

 <서원 입구>

 

반고서원 유허비[3기](盤皐書院 遺墟碑)

울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3호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00-1


유허비(遺墟碑)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석으로 이 비는 고려말 충신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1337~1392)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있다. 포은 선생은 고려 우왕(禑王) 2년(1376) 성균관 대사성의 벼슬에 있으면서 중국 명나라를 배척하고 원나라와 친하게 지내려는 친원배명(親元排明) 외교정책에 반대하다가 이곳에 1년 가까이 귀양살이를 하였다. 그 동안 반구대에 올라 ‘중양절감회(重陽節感懷)’라는 시를 짓는 등 많은 자취를 남겼다. 그 후 지역인들은 선생을 추모하여 반구대를 ‘포은대’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숙종 38년(1712) 언양지역의 유생들이 포은 정몽주, 회재 이언적(晦齋 李諺迪), 한강 정구(寒岡 鄭逑) 세분을 추앙하여 반고(盤皐)서원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고종 8년(1871) 흥성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그 후 지역 유림들이 포은대영모비(1885), 포은대실록비(1890), 반고서원유허비실기(1901) 등 3기의 비석을 세웠으며, 1965년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회룡을 하듯 물길은 굽이치고, 거북이 한마리가 물을 찾아 내려온다.>

 

포은선생의 “중양절 감회”라는 싯구를 찾아보니,


 

重陽節 感懷[중양절 감회]

구월 구일의 감회


節序重陽亦暑消[절서중양역서소]

중양의 절서가 되니 역시 더위는 사라지고

天高馬膩冷霜朝[천고마니냉상조]

하늘 높고 말은 살찌나 서리 내린 아침은 차네.


黍禾嚲嚲昇祥旭[서화타타승상욱]

곡식은 익어 늘어졌는데 좋은 아침 해 뜨고

鴻雁嗈嗈聽遠霄[홍안옹옹청원소]

기러기 짝지어 우는 소리 멀리서 들리네.


國泰民安時絶好[국태민안시절호]

국태민안 하니 때는 더할 나위 없이 좋고

風調雨順歲豊饒[풍조우순세풍요]

풍조우순 하니 해는 풍년들어 넉넉하네.


重陽把酒無量感[중양파주무량감]

중양절에 술잔드니 더없이 좋은 감정이라

擊壤歌呼紫陌遙[격양가호자맥요]

도성의 길 멀리서 풍년가 노래 부르도다.

출처 : 제 49회 kbs 洌上詩社  小艸 李南叔 吟

 <반고서원 유허비각>

 

시 한수 읊으니 일행은 저 멀리 가버리고 바삐 걸음을 재촉하여 뒤따라간다. 가는 길목에“「대곡리 공룡발자국 화석」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3호”가 있어 구경을 하고, 반구대암각화를 찾았다. 안내판에는  

  <공룡발자국>

 

울산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국보 제285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산234-1


이것은 암벽경사면(10m x 3m)에 290여점의 물상이 새겨져있는 선사시대의 암각화이다. 강바닥보다 높은 암벽위에 새겨져있어 원래는 물에 잠기지 않았으나 주변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부터 물속에 잠겨 가뭄 때가 아니면 볼 수 없게 되었다. 암각화는 여러 가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인물상, 동물상, 기타 배 같은 물상들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인물상은 탈을 쓴 가면, 물짐승을 잡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기잡이하는 어부 등이며, 동물상은 사슴, 호랑이, 멧돼지, 고래 등이고 물상은 이 짐승들을 잡는 배, 그물, 덫 등이다. 이 그림들은 바위면을 쪼아가는 기법으로 조각한 것인데, 선과 점으로 단순소박하게 새겼지만,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과 역동감을 느낄 수 있어 자연주의 양식에서 추상주의 양식으로 옮겨가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신석기 후기 내지 청동기시대의 사냥 미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따라서 이 조각은 울산지역에서 고기잡이와 사냥에 종사하던 수렵. 어로인들이 사냥의 풍성과 다산을 기원해서 만든 일종의 종교적인 선사미술의 대표작품이다. 고 적고 있다.  

 

  <안내표지판 사진>

   <반구대 암각화의 모습>

  

때죽꽃이 활짝 피어 향기를 더하지만 이제는 되돌아가 「천전리 각석」을 보러갈 시간이 되었다.

  <때죽꽃이 한창 예쁘게 피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