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울산 천전리 각석(보물 제147호)

천부인권 2009. 5. 15. 19:34

 

 

  <굴피나무>

 

“반구대암각화”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굴피나무’가 있어 자료로 쓸겸 사진한 장을 남기고, 서둘러 일행들을 따라간다. 「천전리 각석」이 있는 곳은 물길을 거슬러 2.3Km 정도 걸으면 도착하는데 자동차로 이동을 할 수도 있다. 「대청계곡」을 따라 걸어가는 오솔길은 개비리길처럼 강가의 절벽을 따라가는 제법 운치가 있는 숲으로 이어진 오솔길이다.

오솔길이 끝나는 절벽 위에서 보니 앞서간 일행들이 길을 찾고 있었고 자연이 만들 돌다리는 물이 많아 건너지 못해 조금 위쪽에 나있는 길을 선택하는 중이었다. 맞은편 강가에「천전리 각석」이 보인다.


 

<건너가지 못한다고 일행들에게 알려주는 모습>



  <맞은편에서 바라본 모습>

 

일행들이 강을 건너가는 모습이 예쁘게 보여 사진 한 장을 남기면서 재빠르게 따라갔다. 돌계단을 내려서니 먼저 온 일행들이 각석을 보고 있었다.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많이 있어, 각자의 상상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여 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계곡의 물을 건너는 일행들>

 

울주 천전리 각석(蔚州 川前里 刻石)

국보 제147호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207-8


바위나 큰 절벽, 동굴안 벽면 등에 사물이나 기호를 쪼기, 새기기, 칠하기 등의 기법으로 그린 그림을 바위그림, 암각화(巖刻畵)라고 한다. 바위그림은 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에서도 발견되지만 전형적인 사례들은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주로 찾아진다. 바위그림은 대개의 경우 풍요, 다산, 제의 산물로 이해되고 있다.

이 바위 상부에 면쪼기로 나타낸 사슴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동물과 선쪼기로 나타낸 다양한 기하무늬가 있고, 하부에 여러 명문(銘文)과 가는선긋기에 의한 인물 및 동물상 등이 있어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상부의 마름모꼴 무늬, 굽은 무늬, 둥근 무늬, 우렁 무늬, 사슴, 물고기, 새, 뱀, 사람얼굴상 등은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풍요의식과 관련된 표현으로 해석된다. 하부의 기마행열, 배의 항해 모습, 용, 말, 사슴 그림 300여자의 명문은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사람이 남긴 것으로 신라사람들이 삼국시대 이래 이곳을 성지(聖地)로 여겼음을 짐작하게 한다.



  <처음 본 각석 모습>


 

 <상상을 해 보세요>

 

800자가 넘는 이글들은 신라의 왕과 왕비가 이 곳에 다녀간 것을 기념하는 내용으로, 특히 신라 법흥왕 2년 (525) 때 진흥왕의 아버지인 입종 갈문왕이 이곳을 다녀갔다는 기록도 있고, 호세, 수품, 영랑 등 여러 화랑의 이름이 있어 당시 삼국통일의 주역이 된 신라 화랑들의 수련장소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내용 중에는 관직명이나 6부체제에 관한 언급이 있어 6세기경의 신라사회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그리고 법흥왕 때 두 차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의 글씨>



  <뭘로 보이나요>


 

<경사진 벽면에 새겨진 각석>


 

 <돌아나오는 길에 계곡상류 모습>


 

<천전리각석의 안내판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