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삼강주막도 풍경화가 되어간다.

천부인권 2009. 9. 17. 11:38

 회룡포를 뒤로하고 삼강주막을 향해서 차를 몰았다. 삼강마을 입구 길 가장자리에 잠시 주차를 하고 시를 적은 비석과 마을입구 장승도 구경하며 관광객을 위해 심어둔 것 같은 조롱박 터널을 돌아보았다.


 

 <삼강주막>

 <삼강마을 입구 풍경>

 

 “주모! 막걸리 한잔 주소!” 한양으로 무거운 등짐을 지고 장사를 하러 가는 보부상들이 낙동강을 건너와 여기 삼강주막에서 막걸리 한잔에 삶의 애환을 녹여 낼 것만 같은 환상이 정작 여기 와서는 깨어져 버렸다. 삼강교 위에서 스치며 얼핏 본 삼강주막은 영화세트장 같다는 느낌을 받아 설마 이곳이 삼강주막일 줄은 몰랐었다.

 

옛 주모의 사진과 지금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의 표정을 비교 해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가 있다. 이곳을 450여년이나 지키고 있는 회화나무는 변화하는 이런 풍경을 어떻게 관조하고 있을까? 이 회화나무는 향교나, 절, 궁궐, 선비의 집 등에 주로 심어 두고 있는 신목인데, 사람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기운이 있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선비에게 임금님이 하사를 하였다. 그런 귀한 나무가 나룻터에 있는 것은 처음 본다.


  <삼강주막의 이모저모>

 

삼강주막에는 예전 사진이 걸려 있어 지금의 모습과 비교를 해볼 수 있는데, 주막을 복구 하면서 주변의 경관을 완전히 바꾸어 버려 운치가 많이 떨어져 버렸다. 편리하고 넓게만 하려니 주변의 논을 전부 매립했는데 주차장 일부는 논으로 그대로 두어 옛 정취를 살리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였을 것이다.


 

  <부엌과 마루>

 

다리가 건설되면 나룻터는 쇄락하고 머지않아 기억저편에서 흐릿한 흔적만 남게 된다. 삼강주막도 삼강교가 건설되어 사라질 위기에 오히려 1900년경에 지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독특한 구조로 주막이라는 기능에 충실한 특징을 지닌 삼강주막을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34호로 지정하여 이를 홍보하고 마을주민들이 직접 주막을 운영하여 관광명소로 만들어간다는 점에서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부엌에서 바라본 풍경>


감병만선생님과 잠시 삼강주막 집 구조를 둘러보았다. 부엌의 풍경과 방안의 모습도 사진으로 남기고, ‘들돌’로 힘자랑을 했을 옛 선조들의 모습도 상상해 보았다. 싸리나무로 얼기설기 역어 만든 ‘통시’가 아직도 남아 있어 옛 생활상을 엿보게 한다. 즐비한 장독 속에는 어떤 것들이 담겨있을까?


 

  <삼강주막의 이야기가 묻어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삼강주막에서 팔고 있는 음식을 사먹기 위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렸다. 메뉴판은 문창호지에 쓰여 있다. 「주모한상」이라는 모듬은 두부, 도토리묵, 배추지짐이, 막걸리가 세트로 되어 있는데, 이렇게 하면 12,000원이다. 우리는 막걸리를 빼고 칼국수 2그릇을 추가 시켰다. 막걸리 5,000원을 빼고 합이 13,000원이었다. 이런 곳에 오면 꼭 그 마을의 특색 있는 음식을 먹어 보는데, 맛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그곳에서만 느끼는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다. 조미료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칼국수는 밀가루 맛이 조금 났으나 워낙 늦은 점심이라 후딱 비웠다. 배추2장에 파 몇 개를 얻어 밀가루에 묻혀 지져낸 지짐이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먹을 만했다.


 

  <주방풍경>

 

갑자기 약간의 소나기가 내려 오두막 마루에 앉아 있으니 빗물이 튀어 올랐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초가집의 풍취이다. 비가 그쳐 둑에 올라 삼강교 아래로 흐르는 낙동강을 쳐다봤다. 다리의 끝자락에 내성천과 금천의 합류점이 조금 보인다. 낙동강 삽질이 시작되면 그나마 이 풍경도 사라지겠다 싶으니 여태까지 좋았던 기분이 잡쳐진다.


 

  <보부상들이 묵어가던 객사들의 풍경>

  <삼강주막 전경>

 

삼강교 아래에서 이제야 자리를 잡아가는 삼강주막의 운명도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이런 생각이 들면 잽싸게 자리를 떠나는 것이 상책이다.


 

  <둑에서 바라본 낙동강>

  <그림같은 풍경이 오래도록 남아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