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담선생문집책판 및 구산선생문집책판(秋潭先生文集冊板 및 龜山先生文集冊板)
경상남도 문화재도록에 올라 있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10호는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620번지에 사는 파평윤씨 문중에 있으며,『추담선생문집책판 및 구산선생문집책판(秋潭先生文集冊板 및 龜山先生文集冊板)』은 1982년 8월2일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수량은 86판, 재질은 목판으로 조선시대(1910)에 만들어진 것이다.
문화재도록에 의하면 추담선생문집책판(秋潭先生文集冊板)에는 「추담 윤선(尹銑,1559-1640)의 시와 상소문, 편지, 연보(年譜) 등을 그의 후손인 병모(炳謀), 병문(炳文)이 편찬하여 1910년에 간행한 추담선생 문집책판이다. 윤선의 자는 택원(澤遠), 호는 추담(秋潭)이며, 본관은 파평이다. 공의 고조 때부터 구평(龜坪)에 와 살았고, 30세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관계에 나아가게 되었다. 그 후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예조와 이조판서 등 주요 관직을 역임하였고, 벼슬에서 물러나 산수를 즐기다가 여생을 마쳤다.」고 적어 두었고, 이 문집에는 그의 시국관이 잘 드러나 있으며, 특히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행적과 진주성 전투에 관한 다양한 사실들도 기록하고 있어서 임진왜란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구산선생문집책판(龜山先生文集冊板)은「구산 윤탁(尹鐸, 1554~1593)의 실기로서 역시 1910년에 그 후손들이 유문(遺文)과 간행 당시 문인들의 글을 받아 간행한 것이다. 윤탁은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 등과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고 기록한 것이다.
공은 제1차 진주성 전투 때는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을 도와 참전하였고,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도 참전하였으나 성이 함락될 때 김천일(金千鎰), 최경회(崔慶會) 등과 함께 순국하였다. 진주성 촉석 정충단(矗石 旌忠壇)에 위패가 모셔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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