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암행어사 마패 어떤 곳에 썼을까?

천부인권 2009. 10. 10. 07:28

 

 

조선시대 왕명을 비밀리에 받고 민정을 살핀 임시적 관직이 암행어사 였는데, 인조 때부터 제도화되어 젊은 조신(朝臣)을 국왕이 직접 임명하여 봉서(封書) ·사목(事目) ·마패 ·유척(鍮尺) 등을 수여하였다. 봉서는 남대문을 나서야 뜯어 볼 수 있고 그때서야 누가 무슨 도의 암행어사로 가는지 신분표시와 임무의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암행어사의 증표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패와 유척으로 마패는 당시 교통  수단인 말을 빌리는 증표로 사용되었고, 어사는 소지한 마패에 조각된 말의 수량만큼 역마를 빌릴 수 있었다. 


유척은 순수한 구리로 만든 자인데, 조선시대 국가가 인정하는 도량형 제도상 척도의 표준이다. 이것은 국가를 운용하는 매우 중요한 수단이었다.

 

“암행어사 출두요~~!”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어사가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는 군사를 움직이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였지만 집안간의 송사나 분쟁에 대한 판결을 하기도 하였다.

위 사진은 암행어사가 마패를 인장처럼 사용하였는데, 집안의 송사를 판결하면서 여러 번 마패로 직인을 찍었다. 이것의 내용은 어떤 집안에 조선시대의 음서제도에 의한 벼슬을 내리는 것에 관해 그 집안의 장손이 자신이 받아야 된다는 송사를 하자 암행어사가 이 벼슬은 장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칭송하고 나라에 공이 많은 차남의 집에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판결을 적고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패를 직인으로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