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정분(情分)난 개(犬)를 기리는 비(碑)

천부인권 2009. 10. 15. 08:21

 

<개비와 무덤>

 

학포리에서 청암리로 가는 길옆에 정분난 개를 기리는 폭 52cm, 높이 125cm, 뚜께 14cm인 제법 반듯한 비석이 창녕군 부곡면 노리 790번지에 서있다.
인근에 사시는 분들은 이 개비(犬碑)와 개 무덤이 왜 이곳에 있는지 정확히 알지는 못하나 “이 개비가 서 있는 곳에서 청암마을 입구인 임해진까지는 낙동강이 숨겨둔 아름다운 절벽으로 사람의 접근을 막아 둔 곳이었다 한다.”


 

<글씨가 쓰여져 있었지만 읽기가 힘들다.>

 

“어느 날 암내를 맡은 개가 정분이나 이웃마을 청암리로 가기위해 낙동강의 절벽을 따라 회포를 풀며 오고가다가 개가 다니는 작은 오솔길을 만들었다. 이때까지 거리상으로는 산모퉁이 바로 돌면 인근에 있는 마을이지만 절벽이 가로막아 낙동강에 배를 띄워서 왕래를 하는 불편함이 있었는데, 개가 사람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어 그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노리마을 사람들이 개가 죽자 무덤을 만들고 이 개비(犬碑)를 세웠다고 한다.”

 

<청학로 절벽길을 가는 길 옆에 이렇게 서 있다.>

 

이곳의 아름다운 오솔길은 창녕군지에 명승지로 기록되어 있다고 하며, 이후 오솔길이 불편하여 지금은 자동차가 달리는 길로 만들었다. 그곳에 사시는 주민 한분은 지금처럼 길을 만드는 기술이 있었다면 이 길을 터널로 뚫어 아름다운 오솔길도 보존하고 사람들도 쉽게 왕래를 했을텐데, 그때는 이 길이 유일한 대안이라 아름다운 오솔길을 파괴하고 나니 영원히 아쉽다고 하셨다.


 

<청학로 모습>

 

이 길을 가노라면 높다란 절벽위에 이 도로의 개설 기념비가 서 있어 도로의 이름과 내력을 적어 두고 있다. 기념비에는 이렇게 적어 두고 있다.
「이 길은 태고에 부곡면 청암리 와 학포리 사이를 잇는 2Km의 낙동강변 천애 절벽으로서 창녕군지에 명승지로 기록된 곳이며 사람의 왕래가 거의 불가능하였으나, 두 마을의 견공들이 오랜 세월 짝을 찾아 오가면서 자연스레 오솔길이 만들어 지게 되었고, 주민들은 겨우 도보로 왕래하는 길이었다.

[개(犬)가 맨 처음 길을 열었다고 하여 부곡면 노리 822번지에 개비(犬碑)가 세워져 있다.] 이렇듯 수백 년 동안 교통 불편을 겪어 오다가 1986년 11월 육군 39사단 1116야전 공병대가 군사작전 훈련용으로 시공하게 되었고, 이에 주민들이 경상남도와 창녕군에 건의하여 예산의 일부를 지원 받았으며, 부곡면민들도 물심양면으로 참여하는 가운데 민. 관. 군이 합심하여 새마을운동 당시의 정신으로 추진한 힘들었던 사업으로서 그 도로명을 청암리와 학포리의 이름을 빌려 청학로라 하였다.」

 

*군부대시행 공사개요
- 총연장 : 비포장 2Km, 폭 7m(당초 1~3m)
- 공사비 : 군부대 시공 (장비 수용비 포함 약 3억원 정도)
- 공사기간 1986. 11. 16~ 1987. 05. 30(6개월 보름간)
- 준공식 1987. 06. 04 (노리 현지- 주민 다수 참여)
  *참여기관 단체장


 

<청학로 기념비>

 

<주물연진, 강가엔 텐트를 친 강태공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임해진이란 이름이 이야기 하듯이 이곳은 낙동강 하구 물막이 공사를 하기 전에는 바닷물이 올라왔으며 임해진 맞은편은 옛날 창원의 관문인 주물연진이 있었던 곳이다. 주물연진은 뱃길을 따라 올라오는 일본사신을 맞이하였던 곳으로 창원부사가 직접 그 일을 수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임해진 산기슭에는 근심걱정을 떨쳐 버린다는 ‘소우정(消憂亭)’이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 올라 낙동강의 절경을 굽어보며 잃어버린 심성을 되잡을 수도 있다.


 

<임해진>

 

<소우정(消憂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