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삼한시대 선조들의 지혜 밀양 수산제

천부인권 2009. 12. 8. 22:28

 

 

<안강교 위에서 바라본 수산제 수문이 있는 풍경>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을 찾으려 밀양시 하남읍 수산리 963번지에 가보니 안강교 옆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02호인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에 대한 안내판만 서있고 문화재청에서 본 바위로 만든 수문은 볼 수가 없었다.

 

Daum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를 보면 귀명리 야산의 한 곳을 수산제라고 안내하고 있어 그곳으로 가 봤으나 찾을 길이 없어 12월 6일 일요일에 그곳으로 다시 찾아가 그곳에 사시는 분에게 물어 보니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막막함을 뒤로하고 하남읍사무소에 찾아가 당직을 서시는 분에게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어디론가 전화를 하면서 받아 보라고 한다. 전화를 받아 수산제 수문을 기록하고 싶다고 말씀을 드리니 자신이 자료를 가지고 있으니 커피한잔 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다.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고 있으니 하남읍 이영관 주사님이 직접 자료를 가지고 오셨다. 일요일 날 가족과 오붓하게 지내다 수산제 수문을 찾는 손님 때문에 출근을 하게 된 것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분이셨다. 그리고 생생한 사진자료를 건네주시어 너무 감사했다.


 

  

<수문이 있는 곳>


 

<수문 양쪽에는 이렇게 물이 고여 있다.>

 

 

혹여 수산제 수문을 찾으시는 분이 계신다면 안강교에 가서 구경만 하시고 하남읍사무소에 가셔서 자료를 얻거나 아니면 제가 올린 자료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수문은 물속에 잠겨있어 볼 수도 없고 사진으로 찍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연암반을 높이 약 2m정도, 넓이180cm정도, 길이 약 4m정도를 파내어 성인 어른이 충분히 오갈 수 있는 크기로 만들었다. 그리고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의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저수지 안쪽에 나무를 끼울 수 있는 홈을 팠다. 이 홈은 이중으로 되어 있어 두개의 판을 끼운 후 중간에 흙을 채우면 바깥의 물이 안으로 들어올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어 삼한시대 선조들의 지혜를 알게 한다.

 

 

 

 

 

 

수산제 수문(守山堤 水門)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수산제는 삼한 시대 농사용 저수지로서, 김제의 벽골제(碧骨堤), 제천의 의림지(義林池)와 더불어 고대에 만들어진 3대저수지의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제방의 길이는 728보[보(步)는 한걸음을 떼었을 때의 길이]이고, 둘에는 20리 정도였다.
저수지는 지금의 수산리, 귀명리 지역과 인근 초등면의 검암리, 금포리에 걸쳐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삼한시대 이후 수산제가 계속 있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황폐화 되었다고 전한다. 일제시대에 수리시설을 새로 설치하기 전에 황토로 된 제방이 약 1km정도 남아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저수지는 논으로 바뀌었다.
이곳의 제방은 낙동강의 지류인 용진강(龍津江)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며, 물을 빼내기 위해 자연 암반 밑으로 수문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