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보물 제472호 의령 보천사지 부도(寶泉寺址 浮屠)

천부인권 2009. 12. 5. 17:14

 

 

 

의령 보천사지 부도와 탑을 보기 위해 의령으로 차를 몰았다. 보천사지(寶泉寺址)에 대해 알려진 것도 없고 처음 가는 길이라 차를 타고가면서 이런 저런 상상을 해봤다. 고성 옥천사(玉泉寺)의 옥천(玉泉) 샘이 옥천사의 명칭을 만들었듯이 보천사(寶泉寺)도 그런 약수가 유명하여 이름이 지어졌는지 궁금하였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가니 1037번 지방도를 달리다 우측에 넓은 공터가 보이고 이동식 화장실이 잘 갖추어진 곳에 당도하면 우측에 부도로 가는 길이 있다. 60m여를 가면 산기슭에 단아한 모습을 한 부도를 만난다.


 

 

 

 

 

 이 부도의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보천사지 부도(寶泉寺址 浮屠)
보물 제472호
경남 의령군 의령읍 하리 797-4

 

『수암사(水巖寺)라고도 불리는 보천사(寶泉寺)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던 절이다. 부도는 절터의 북쪽 산기슭 계곡에 세워져 있는데, 위 아래 모두 팔각형의 기본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정사각형의 바닥 돌 위에 삼단의 받침돌이 올려졌다. 팔각의 띠를 돌린 아래받침돌은 위에 용과 구름무늬를 얕게 돋을새김으로 조각하였다. 가운데 받침돌은 팔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기고 여덟 면에는 타원의 조각을 돌렸다. 윗받침돌에는 위를 향한 16장의 연꽃잎을 두텁게 새겼다. 몸돌도 팔각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으나 여덟 면 가운데 한 면에만 자물쇠가 달린 문짝모양을 새겼다. 매우 두꺼운 지붕돌은 꼭지에서 팔각의 모서리로 내려오는 선을 용마루처럼 높게 새겼고, 끝은 큼직한 꽃을 조각해 마감하였다. 지붕돌 꼭대기의 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통일 신라 이후의 팔각형 부도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아래받침돌에 새겨진 용과 구름무늬는 애매하고 형식화 되었다. 무거운 지붕돌도 시대가 내려오는 특징이다. 이 부도는 고려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