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산청삼매가 뭐꼬?

천부인권 2010. 3. 17. 19:23

 

 

 

세속에 찌든 때를 털어내고 싶은 때에 지리산 눈바람을 타고 매화소식 전해오니 가슴은 벌렁벌렁 봄바람이 났지만 경제적 여유가 발목을 잡아 언제 한번 가보나 엉덩이만 들석이다 오늘은 마음먹고 산청삼매(山淸三梅)를 보러 갔습니다. 산청의 삼매를 ‘원정매화’, ‘정당매화’, ‘남명매화’로 부르고 있습니다.


창원의 매화는 춘삼월 눈을 맞고 활짝 피었던 꽃잎이 힘을 잃고 시름시름 앓고 있는데 지리산 눈바람의 혹독한 시련을 겪은 산청삼매(山淸三梅)의 그 기상은 어떠한지 보고 싶어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흥분이 되었습니다.


 

 

돌담이 아름다워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281호로 등재된 “산청남사마을옛담장”이 있는 남사마을에 원정공 하집(元正公 河楫,1303~1380)이 심었다는 670여년이나 된 ‘원정매(元正梅)’가 첫 번째 방문지가 되었습니다. 일설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라고도 합니다만 지금은 고사하고 뿌리에서 여린 싹이 살아남아 그 품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정매’의 또 다른 분신인 듯한 어린 매화나무가 옆에서 자랍니다.

 

 

이집 뜰에 자라는 매화 중에는 활짝 만개하여 매화향기를 온 마을에 뿌리고 있지만 원정매는 아직 다 피지를 않았고 오직 한 송이만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원정매 앞에는 ‘원정공 영매시(元正公 詠梅詩)’라는 시비가 있어 옮겨봅니다.


 

 

 집 양지 일찍 심은 한 그루 매화
찬 겨울 꽃망울 나를 위해 열었네.
밝은 창에 글 읽으며 향 피우고 앉았으니
한 점 티끌도 오는 것이 없어라

 

 


 

  

 


이 ‘원정매’가 있는 고택에는 범상치 않은 현판이 있어 사진으로 남겨 보았습니다. “원정구려(元正旧盧)”라는 글씨에 석파노인(石坡老人)이라 적고 낙관을 찍었는데, 알고 보니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이라 합니다. 이래서 김해의 분산성 만장대에서 본 대원군의 친필을 다시 한번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단속사지에 있는 ‘정당매(政堂梅)’를 서둘러 찾아 나섰습니다. 매난국죽(梅蘭菊竹)이라는 사군자 중에서도 맨 처음 매화가 등장하는 것은 추운 겨울의 눈을 맞고서도 꿋꿋이 봄을 전하는 기상이 목숨을 걸고 올바른 일을 위해 직언을 하는 선비의 절개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단속사지 앞에 차를 세우고 골목길을 쳐다보니 골목 맞은편에 잘 다듬은 돌에 정당매(政堂梅)의 유래를 적어 두었다. 철봉과 쇠사슬로 둘러쳐 보호를 하고 있었고 굵은 줄기는 고사를 하였고 그나마 가는 줄기는 아직도 살아있어 ‘원정매’보다는 나은 편이었습니다. 그곳 주위는 돌담을 둘렀고 그 안에 월영매와 정당매 등을 식재하여 어린 매화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정당매각(政堂梅閣)을 지어 그 안에 두개의 비석을 보관하고 있는데, 이 비석에는 “통정강선생수식정당매비(通亭姜先生手植政堂梅碑)”라 새겨 두었습니다.


 

 

斷俗寺政堂梅 단속사 정당매-조식
寺破僧羸山不古 절은 무너져 중은 핏기 없고 산도 옛날 같지 않으니
前王自是未堪家 전 왕조는 스스로 집단속을 못하였구나.
化工正誤寒梅事 장인은 바르게 교화시키나 찬 매화의 일은 잘못되어
昨日開花今日花 어제도 꽃 피고 오늘도 꽃 피는 구나.



 

 

이 매화를 심은 강회백(姜淮伯, 1357~1402)선생의 통정집에 적어둔 매화에 관한 시가 있어 옮겨 적어 둡니다.

 

偶然還訪 古山來
滿院淸香 一樹梅
物性也能 知舊意
慇懃更向 雪中開

우연히 옛 절에 다시 오니
한 그루 매화에 맑은 향기 가득하고
오래전 사람을 알고 있는 듯
눈 속에서 은근히 바라보며 피었네.



 

 

벼슬에 환멸을 느낀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선생이 61살(1561)에 고향 합천 삼가현 토동(兎洞)을 떠나 지리산(두류산, 頭流山) 양단수(兩端水 ) 아래실골(山天齋)에 들어와 40리 길 단속사에서 만난 사명당(四溟大師, 1544-1610)에게 시 한수를 주었는데, 그 유명한 단속사 정당매(斷俗寺 政堂梅)가 있어 옮겨 적어 둔다. [출처 : 단속사-정당매]

 

 

 

 花落 槽淵石
春深 古寺臺
別時 勤記取
靑子 政堂梅

 돌(구유)웅덩에 꽃 떨어지며
(단속사)절 봄 깊어 가네.
우리 헤어짐 고이 간직차오
정당매 푸른 열매 그리며


 

 

 

 

단속사지에서 남명매(南冥梅)가 있다는 대한민국 사적 제305호가 있는 조식유적지(曺植遺蹟址)로 가려하니 입석리로 돌아 나오게 되어 다른 길을 택하여 단성IC방향으로 다시 와서 그곳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가 있는 산천재(山天齋)를 향하여 출발을 하였습니다.

 

 

 

산천재(山天齋)에 도착하니 너른 뜰에 노란산수유도 꽃을 피웠고, 매화나무도 꽃을 피워 몇몇의 여행객들이 사진도 찍으며 열심히 구경을 하고 있어 “남명매화가 어디에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저 건물 안에 있습니다.”고 답변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산천재로 들어갔습니다.

 

 

450여년의 세월이 말을 하듯 ‘남명매’ 역시 고목이 되어 세 줄기의 나무가 수술을 받고 서있지만 ‘원정매’와 ‘정당매’ 보다는 양호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한 고목에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꽃은 푸른 하늘을 이고 흰구름을 배경삼아 조식선생이 떠난 산천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산천재 안내판에 적혀있는 조식선생의 시가 있어 적어 둡니다.


 

 

 <德山卜居>
春山底處无芳草
只愛天王近帝居
白手歸來何物食
銀河十里喫猶餘

 <덕산에 터를 잡고서>
봄 산 어디들 향기로운 풀 없으랴
하늘 가까운 천왕봉 마음에 들어서라네
빈손으로 왔으니 무얼 먹을 것인가
십리 은하 같은 물 먹고도 남으리.


 

 

 <題德山溪亭柱>
請看千石鍾
非大扣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

 <덕산 계정의 기둥에 씀>
천 석들이 종을 보게나 !
크게 치지 않으면 소리 나지 않는다네.
어찌하여 저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오히려 울지 않을까


 

 

 

<덕산 계정의 기둥에 씀>이란 싯구를 저는 이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천 석들이 종은 지리산 천왕봉을 의미하고, 그 천왕봉을 처서 소리를 내려면 어느 정도의 힘을 써야 하는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리산처럼 남명은 임금이 아무리 도와 달라 불러도 지리산이 소리가 없는 것처럼 응답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 시는 그분의 그릇의 크기와 고집을 짐작케 하기에 충분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