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이궁대는 멸망한 금관가야를 기억한다.

천부인권 2010. 3. 19. 13:02

 

 

낙동강 굽이쳐 흐르다 산야에 부딪쳐 꺾여지며 물길을 달리하는 곳에 우뚝 서서 낙동강과 창원 대산벌판을 굽어보는 이궁대(離宮臺)는 “낙동강이 숨겨둔 비경인 곡강정”을 품에 앉고 아득한 옛 이야기 한 토막을 새겨 놓았다.

 

김수로왕이 만든 나라 김해 금관가야가 제10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 재위 521~532) 때에 이르러 역사에서 그 이름이 사라진다. 가락국 490년의 영광이 신라 법흥왕 19(532)년에 이곳 이궁대(離宮臺)에서 구형왕과 왕비 및 세 아들 노종(奴宗), 무덕(武德), 무력(武力)과 함께 국고(國庫)의 모든 보물을 받치며 신라에 항복하였다.


 

 

 

신라에 왕위를 양도하였다 하여 양왕(讓王)이라는 시효를 얻은 구형왕(仇衡王)이 이궁대에서 가락국 왕조의 별궁인 태왕궁(太王宮,별칭으로 水晶宮)으로 이동할 때에 많은 백성들이 손을 흔들어 주었다고 하는데,  낙동강은 알고 있을까? 힘이 없어 나라를 바치고 죽지 못해 숨어서 지내야하는 비참한 망한 왕조의 심정을......


 

 


아마도 구형왕과 왕비는 세 아들을 볼모로 남기고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남강으로 꺾어지는 합류점에서 다시는 세상을 볼 수 없는 애닮은 마음에 한없이 눈물을 흘렸을지 모를 일이다.


 

 


남강의 거친 물결 따라 오르다 경호강을 지나고 어느새 엄천강에 접어들어 수창궁(水晶宮)에 이르러 망한 왕조의 한을 되씹어 보았지만 5년 후 세상과 영원히 이별을 하여 대한민국 사적 제214호인 [전 구형왕릉(傳 仇衡王陵)]이라는 한국의 피라미드라 회자되는 톡특한 무덤양식을 남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