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문성현 창원시장 후보' 대를 이어 노동운동 하겠다.

천부인권 2010. 5. 4. 19:01

 

 

김주완기자가 “가족관계는 어떻게 되십니까?”라고 묻자
“부인은 선거운동하려고 창원에 와있고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이 있는데, 딸은 4년동안 홈스쿨로 공부를 해오다가 이번에 본인이 학교를 가고 싶다고 하여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여 다니고 있습니다. 엊그제 딸에게 전화가 왔는데 아버지가 농부로 있었다면 농촌지역 전형으로 30점은 보태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출마를 하게 되어 이제는 실력으로만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푸념 아닌 푸념을 하였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습니다.

 

크리스탈님이 “자녀가 한분밖에 안계세요?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으신지요?”라고 묻자
문성현 창원시장 후보는 블로그들에게 재미있게 말씀을 드리자면 세 번째 구속되던 89년도에 마지막 선고를 남겨두고 판사가 「피고는 석방이 되면 또 노동운동을 할 것입니까?」라고 물어  “예”하면 재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순간적으로 “존경하는 판사님 제가 결혼을 하고도 아이를 갖지 않았는데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 당대에 노동해방운동이 완성되기가 상당히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 대를 이어 투쟁하겠습니다.”고 답했습니다.

 

그랬더니 부인이 “아이는 내가 낳는데 그런 이야기 왜했느냐”는 핀잔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정말 아이를 낳을 것인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노동운동한다고 어려워 한명만 자녀를 두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부모님과 장인장모님 모시면서 생각을 해보니 형제들 없이 내 혼자밖에 없다면 편찮은 어른들을 어떻게 모실 수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를 둘은 낳아서야 하는데 한명 밖에 없으니 딸이 나중에 늙은 우리들과 살자면 얼마나 힘들까하고 생각하니 참 미안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고 있다는 마음입니다.


 

 

“부부만의 시간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하신 것은 아닌지” 물어보니

“거창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지금은 같은 이불 덮고 자는 시간이 많습니다만 82년에 결혼을 했는데 부부가 같은 이불을 덮고 산 것이 제 인생에서 5%정도 밖에 않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순리를 따라야하는데 40이 넘어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어려웠습니다. 용하다는 한약도 먹으며 어렵게 아이를 가졌습니다. 젊을 때 아이를 낳아야 합니다.”

 

김주완기자가 “지금까지 노동운동을 하면서 사셨는데 무슨 방법으로 생활비를 벌었는지 궁금합니다.”고 묻자
문성현 창원시장 후보는 “적게 먹었습니다. 처음에는 회사를 다녔습니다. 85~88년까지가 가장 어려운 때였는데, 그때는 징역을 살았으니 국가에서 밥을 주었고 결국은 이회창 대법관이 복직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회사는 월급은 줄 테니 출근하지 말아달라고 하여 적은 돈이지만 동지들과 라면 사먹는데 썼습니다. 이후에 아이가 있으니 둘 중에 한사람은 경제활동을 하자고 하여 창원에서 옷가게를 시작했다가 마산에서도 했는데 장사가 되지 않아 대전에서 옷가게를 지금까지 집사람이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