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창원 동읍 죽동리의 민속유적 방구틈과 전설

천부인권 2010. 7. 21. 17:57

 

 

<창원시 가술리에서 죽동리 가는 길에 심어진 메타쉐콰이어 길>

 

 

 

 창원의 민속유적지 중에 특이한 곳이 있어 찾아보았다.  대산면 가술리에서 죽동리를 가는 길에는 1km여에 이르는 메타쉐콰이어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어 앞으로 담양의 메타쉐콰이어 거리 못지않은 멋진 여행상품이 될 것으로 기대를 하게 하였다.


 

 

 <마을 구릉정상에서 바라 본 주남저수지와 들판>

 

 

<메타쉐콰이어 길이 안내하는 저 멀리에는 진영의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밀양시 초동면 이궁대와 수산대교가 보이고 너른 대산벌판이 한폭의 그림이다.>


 

“방구틈”의 정확한 위치를 몰라 죽동리 뒤편 높지 않은 곳이지만 구릉의 정상에 올랐다가 동읍과 대산면의 들판을 보니 사진으로 남기지 않을 수 없었다. 창원의 명물 주남저수지와 김해가 한눈에 들어오고 메타쉐콰이어 거리도 군인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을 한 것처럼 멋있다. 눈을 동쪽으로 돌리면 저멀리 수산대교도 보이고 밀양 초동면의 가야국 구형왕이 신라에 나라를 받친 이궁대도 한 눈에 들어오며, 들판의 벼들이 녹색 융단을 펼쳐 놓은 듯 하다.


 

 

 

창원시 동읍 죽동리 130-5번지 뒤쪽 독립 구릉에는 “방구틈”이라는 자연이 만든 바위가 있다. 바위 정면에는 직경 50cm정도의 원형 구멍이 있어 주민들은 똥뫼, 방구틈, 장군바위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이 바위의 구멍에 돌을 던져 넣으면 아들을 낳는 다는 이야기가 전해와 예부터 아들을 낳으려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를 올리고 돌을 던져 넣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농업을 삶의 기반으로 하기에 농사를 지을 힘 좋은 아들을 낳아 부(富)를 이루고자 했던 기자신앙(祈子信仰)의 일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 간절한 민간신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위의 구멍은 여성의 성기를 상징하고, 던져 넣는 돌멩이는 아기씨로 생각하면 음양의 이치가 확실해 진다. 바위의 구멍에는 여러 개의 돌멩이가 들어 있어 많은 이들이 치성을 드린 것으로 보였다.


 

 

 <방구틈 구멍에는 작은 돌멩이가 들어 있다.>

 

기자신앙(祈子信仰)은 부녀자들이 가계를 이어갈 아들을 얻기 위해 기원하는 행위들인데, 주체자의 방법에 따라 일반적으로 치성기자, 주술기자, 주물기자 등으로 분류한다.
치성기자는 초월적인 존재나 또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자연물에 치성을 드리는 유형으로 기원대상은 산신, 용신, 삼신, 칠성 등의 신(神)과 기암거석, 거목 등의 자연물이다. 의례방법은 촛불을 켜놓고 정화수를 떠놓고 손을 비비는 형식으로 이른 새벽에 은밀히 진행한다.
주술기자는 특정한 약물이나 음식을 먹는 유형으로 아들을 낳은 산모에게 첫국밥을 해주고 그 집에서 준비해 두었던 것을 먹기도 하고, 금줄에 달려있는 고추를 몰래 가져와 달여 먹기도 하며, 석불의 코를 깎아 갈아 마시기도 하고, 동쪽으로 뻗은 뽕나무 가지의 오디를 먹기도 한다.
주물기자는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거나 은밀한 장소에 숨겨두는 유형으로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베개 속에 두기도 하고, 아들을 많이 낳은 집의 식칼을 훔쳐다가 작은 도끼를 만들어 몸에 지니기도 한다. 어떤 곳에서는 아들을 낳은 산모의 피 묻은 고쟁이를 몰래 가져다 입기도 하며,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민간에서 널리 행해지지만 그 광경을 목격하기는 어렵다.

 

 

이 방구틈에는 또 다른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이 바위 앞 오막살이에 살던 부부가 “방구틈”에 돌을 던져 넣었더니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이는 태어 난지 얼마지 않아 좁쌀과 메밀을 가지고 바위 속으로 들어가면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태를 새(억새)로 잘랐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 하였다.

 

당시 나라에서는 성인이 나면 역적이 된다며 별점을 보고 그런 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잡아 죽여 버리도록 하였다.


이 아이가 태어날 때 남쪽에 이상하게 큰 별이 나타나자 나라에서는 군사를 보내어 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군사들이 도착 했을 때는 이미 바위 속으로 들어간 후였다. 이야기를 수소문하여 듣고 온 군사들은 바위를 부수고자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자 아이의 어머니를 잡아 추달하기 시작했고 비밀을 지키고자 노력했으나 끝 내에는 실토하고 말았다. 아이의 탯줄을 억새로 잘랐다는 사실을 알고 군졸들이 황새대(억새의 경상도 말)로 바위를 내리치자 바위가 갈라지니 그 속에는 한 쪽에 갑옷을 걸치고 용마를 탄 아이가 튀어나왔는데, 순간 아이의 머리는 공중으로 치솟아 땅에 떨어지고 용마는 슬피 울며 날뛰다가 지쳐 물에 빠져 죽었다.
그때 아이의 머리가 떨어진 자리가 지금까지도 움푹 파인 체 남아있고 용마가 빠져죽은 늪도 남아 있는데 ‘썩은디늪’이 그것이다. 용마가 슬피 울며 날뛰던 벌판을 ‘울루말등’이라고 한다.


‘썩은디늪’은 산남저수지 인근이고, ‘울루말등’은 태봉산(해발 106m)의 한 자락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전설은 창원시 삼정자동 소부골 "장군바위"에서도 전해 내려 오고 있다.

삼정자동 장군바위의 전설(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