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지 못하는 약초가 없다하여 붙어진 밀양 재약산은 신비로운 자연의 이치를 느끼게 하는 얼음골을 품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명소가 된지 오래다. 수많은 피서객들의 차량이 꼬리를 물고 얼음골 입구의 주차장은 이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비좁은 틈새에 주차를 하고 얼음골을 향했다. 주차비는 1,000원이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위에서 아래를 보니 계곡은 물놀이온 피서객들이 차지하였다. 길가에는 이곳 밀양 남명리 주민인 듯한 분들이 집에서 생산한 먹거리를 팔고 있어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
계곡 초입에는 천연기념물 제224호 밀양 남명리 얼음골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어 얼음골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여름(夏)에 얼음이 어는 얼음골-
해발 1,189m의 재약산(載藥山) 북쪽 중간 해발 600m 지점의 얼음골(氷谷) 계곡은 늦은 봄부터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처서(處暑)가 지날 무렵부터 얼음이 녹는 신비로운 이상기온지대 입니다. 약 3,000평쯤 되는 이 돌밭에는 바위틈에서 얼음이 얼기 시작하여 더위가 심해질수록 얼음이 더욱 많아지는데 삼복더위가 한창일 때 절정에 이르고 반대로 가을철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겨울철에는 바위에서 얼음 대신 더운 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는 이상기온지대 입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1,000원)을 구입하여 계곡을 오르면 간간히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스치며 지난다. 천황사 앞에는 이 계곡의 물을 먹을 수 있도록 음료대가 마련되어 있는데 솟아나는 물은 얼음처럼 차가워 한 모금 마시면 산길을 걷는 더위까지도 잊게 만든다. 이곳 천황사에는 보물 제1213호 밀양 천황사 석불좌상이 모셔져 있어 대웅전으로 향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밀양 천황사 석불좌상(密陽天皇寺石佛坐像)
보물 제1213호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 1-7
천황산 얼음골의 천황사 경내에 모셔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이다. 머리 부분은 새로 만들었으나 몸의 비례가 인체와 아주 비슷한 편이다. 부드러운 어깨에 당당한 가슴, 날씬한 허리에 얇은 법의(法衣)는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불상의 우아하고 사실적인 표현은 8세기중엽의 것과 비슷하지만, 얇은 주름의 세련된 표현은 8세기후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좌는 위에 연주문을 두르고 아래에 2겹의 연꽃무늬를 새긴 상대(上臺), 2줄띠를 새긴 원형받침이 있는 중대(中臺), 복판연화무늬 위에 11마리의 사자를 새겨 돌린 하대(下臺)의 3부분으로 되어있다. 사자를 새긴 하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정면에는 향로를 끼웠던 것으로 보이는 구멍받침이 있다.
8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가장 우수한 석불의 하나로 사자좌(獅子座)의 대좌를 갖춘 유일한 예이다. 신라조각의 역사에서 반듯이 다루어져야할 귀중한 불상이다.
안내판에서도 설명하고 있지만 사자좌(獅子座)는 부처가 앉는 자리를 의미하고, 부처는 인간 세계에서 존귀한 자리에 있으므로 모든 짐승의 왕인 사자에 비유하는 것인데, 사자를 무려 11마리나 새긴 것은 비로자나불의 위대함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해 본다.
천황사에서 벗어나 계곡으로 오르는 길로 접어들면 냉장고의 문을 열어 둔 것처럼 찬바람이 온 몸을 스치며 한기를 느끼게 한다. 추위를 느끼는 온도를 유지하는 얼음골의 신비를 경험하면서 오르는 산길은 힘든 줄도 모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산내면 남명리 95-2번지 는 마지막 남은 결빙지로 사람의 접근을 막는 철책이 둘러쳐져 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밀양 남명리의 얼음골(密陽 南明里 氷谷)
얼음골은 천황산 북쪽 중턱 해발 700m에 이르는 약 9,000평 넓이의 계곡 내 60도 경사진 돌밭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삼복더위에 얼음이 얼고 8월 초순부터 얼음이 녹기 시작하며 보호철책이 있는 곳에서 천황사 절이 있는 곳까지 바위틈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신비로운 이상기온지대 이다. 한 여름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맑은 물은 손을 담그면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주변의 가마불 협곡과 호박소, 오천평바위 등과 함께 관광을 겸한 여름 피서지의 명소이다.
결빙지에서 불과 240m 떨어진 곳에 가마불폭포가 있어 가보니 물의 양이 많지 않아 장관은 아니었지만 좌측의 숫가마불폭포는 직벽의 웅장함을 자랑하였고, 우측에 있는 암가마불폭포는 억겁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폭포였다. 가마불이란 이름은 이곳이 가마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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