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수컷 호랑이가 창원읍성 서문 망미루(望美樓) 안내문에 있는 이유

천부인권 2011. 8. 13. 09:17

 

 

 

창원읍성은 1476(성종 7)년에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 높이 12척 7촌, 둘레가 4,410척의 성으로 완료되었으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허물어 진 것을 1649(인조 27)년에 다시 건설하여 총연장 2,004척, 옹성 4개소, 600여의 여장을 설치하였다.
임진왜란 때 창원부민 모두가 한명도 왜적에게 투항하지 않고 끝까지 싸운 것을 기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정에서 “창원대도호부”로 승격시켜 창원부 백성들의 애국심에 보답하였다.
 
창원읍성의 4대문은 남문이 진남루(鎭南樓), 동문을 향양루(向陽樓), 서문을 망미루(望美樓), 북문을 공북루(拱北樓)라 불렀고, 성내에 사미당(四美堂), 육각정(六閣亭), 향사당(鄕射堂), 장관청(將官廳), 인리청(人吏廳), 통인방(通引房), 관노방(官奴房), 관비방(官婢房), 교노비방(校奴婢房) 등이 있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관가 건물인 동헌은 현 창원초등학교 자리에 있었고, 객사는 동헌의 동쪽에 자리하였으며 그 앞에 객사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1882년 웅천향교문으로 사용되다가 1943년 우담화상이 창원 불곡사를 재건하면서 일주문으로 변형시켜 전하는 창원읍성의 유일한 건물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불곡사 일주문(佛谷寺 一柱門)”은 고려시대에 초창된 목조와가로 정면3문(正面三問)으로 건설되었으며, 주두(柱頭) 위에는 민화풍의 동물조각이 있는데, 좌로부터 호랑이, 청룡, 황룡, 거북이가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호랑이의 모습은 해학적인 모습이고 엉덩이부분은 수컷 호랑이의 성기를 표현했는데 이 모양 그대로 창원읍성 서문 망미루(望美樓) 안내문에 조각해 두었다.


 

 

<창원읍성 서문 망미루(望美樓) 안내문의 호랑이>

 

 

<불곡사 일주문의 호랑이>

 

이렇게 불곡사 일주문과 망미루 안내문에 같은 형식의 조각을 한 것은 이 두 건축이 동일한 창원읍성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만들진 것 같다.
창원읍성이 개인사유지에 속하다보니 집을 짓거나 도로를 만들면서 성곽의 모습을 변형시키는 일이 있어 보존이 시급하지만 창원시는 아무른 대책도 없는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