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전통5일장과 재래시장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경남의 5일장들

천부인권 2012. 11. 27. 08:53

 

경남정보사회연구소에서 "공감! 경남오일장의 맛과 멋"이라는 이름으로 경남의 전통재래시장 탐방을 하면서 시대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린 전통5일장을 보았다. 고성 거류면 면소재지인 당동장과 남해 삼동면 동천장을 찾으니 이미 10수년 전에 폐장이 되어 지역민들에게 조차 희미한 기억으로 남은 장소였다.

 

 

 

 <고성 거류면 당동장의 흔적1>

 

 

 <고성 거류면 당동장의 흔적1>

 

마라톤 선수 이봉주가 연습을 했던 장소라 하여 유명해진 동해면과 거류면을 잇는 한내 삼거리에서 당동 입구인 봉곡 삼거리를 거쳐 마을로 접어더니 거류초등학교를 지난다. 거류면의 가장 중심가인 당동5길을 따라 선착장으로 내려가니 200~300여 평 남짓의 당동장터가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은 철거하지 않은 2동의 장터 건물이 남아있어 옛 5일장의 흔적은 확실하게 볼 수 있다. 버려진 장터의 건물에는 어구들이 쌓여 있고, 지금은 인근 사람들의 창고처럼 이용되고 있다. 장터는 바다와 50m 거리에 불과하다.

 

 

 

<당동 선착장 모습>

 

 

 

이왕 이곳까지 왔으니 당동선착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 당동 앞 바다는 1592년(선조 25) 5월 7일 이순신(李舜臣)과 원균(元均)의 연합함대가 옥포(玉浦)·합포(合浦) 해전에서 31척의 왜선을 무찌르고 창원 난포에서 진을 치고 승리의 기쁨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 다음날 8일 이른 아침에 진해(鎭海) 고리량(古里梁)이라는 곳에 왜선이 정박해 있다는 정보를 접수했다. 이를 치기 위해 조선수군은 남포바다를 출발하여 당동앞 바다(적진포)에 다다랐을 때 왜군은 대중형 함선(艦船) 13척을 정박시켜 놓고 민가들을 습격하며 분탕질을 자행하고 있어 이순신은 왜구와 전투를 하여 대선 9척과 중선 2척을 파괴하는 성과를 거둔다. 이 전투는 옥포·합포 해전에 이어서 거둔 해전에서의 3번째 승리로 조선수군이 해전에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된 적진포 해전(赤珍浦海戰)으로 이 전투로 이순신은 5월 23일 가선대부(家善大夫)로 승서되었다.

 

 

 

<이순신의 바다 적진포 (赤珍浦)>

 

 

<남해 삼동면 동천 마을 풍경>

 

 

<남해 삼동면 동천장의 모습>

 

혹시나 싶어 남해군청에 전화를 하여 남해 동천5일장이 지금도 서고 있는지 물으니 10수년 전에 이곳 역시 교통의 발달과 대형마트의 출현으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도 그 흔적이나마 남겨 보고자 애틋한 마음으로 남해 동천장을 향해 차를 몰았다. 삼천포창선대교를 지나 지족에서 좌회전을 하여 삼동면으로 접어들어 6km정도를 가니 삼동초등학교 건물이 보였다. 이곳이 동천5일장이 서는 곳인데 몰라서 네비에 기록한데로 가다보니 자꾸 오지로 빠지는 기분이 들어 오토바이를 타고 가시는 분에게 물으니 자신을 따라 오라고 한다.

 

 

 

 

다시 되돌아오니 내가 지나온 마을이다. 마을은 화천이라는 천이 흐르고 마을 뒤쪽의 산꼭대기는 알고 보니 원예예술촌이었다. 이곳을 간다면 마을의 화천이 흐르는 봉화교를 지나 산위로 올라가서 원예예술촌을 구경하고 내려가면 독일마을이 나온다. 독일마을이나 원예예술촌의 전망대에서 물건리를 바라보면 물건리 어부림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을 어귀에 차를 주차하고 골목길로 들어가니 동천5일장의 영화가 그리운 꽤 너른 공터가 나오고 시장의 건물인 듯한 곳에는 어구가 쌓여 있고 다른 건물들은 창고 및 자동차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화천의 뚝방에 올라 역사 속으로 사라진 풍경을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