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가면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옆에 크기가 가로 1.15m, 세로 4.35m인 무명천을 조각처럼 맞춘 커다란 깃발에 “수(帥)”라는 글이 쓰인 대형 깃발이 펼쳐져 있다.
이곳 안내판에는 어재연 장군 수자기(魚在淵 將軍 帥字旗)라 적고 아래처럼 설명을 하고 있다.
어재연 장군 수자기(魚在淵 將軍 帥字旗) 수자기(帥字旗)는 조선시대에 군영(軍營)의 최고지휘관이 사용했던 군기(軍旗)이다. 이 수자기(帥字旗)는 신미양요(辛未洋擾,1871년) 때 강화도 수비대장이었던 순무중군(巡撫中軍) 어재연(魚在淵 1823~1871)장군이 사용한 것이다.
당시 미 해군이 이 기를 노획하여 본국으로 가져간 후 미 해사박물관에 보관해 오던 것을 한국 해군과 문화재청의 노력으로 2007년 10월 22일에 장기대여형식으로 반환되었다.
이 기의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이 것은 원본과 똑 같이 복사한 것이다.
이 기의 크기는 가로 1.15m, 세로 4.35m, 재질은 무명천이다.
이 수자기는 조선의 역경과 패망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나라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깊은 교훈을 담고 있는 우리 역사에 하나밖에 없는 희귀한 자료이며, 시대를 앞서 따라가지 못하면 어떻게 역사의 뒤안길로 나라가 사라지는 지에 대한 확실한 유물로 남은 기(旗)이다.
1866년 미국이 제너럴셔먼호(號) 사건을 빌미로 조선을 개항시키려고, 1871년(고종 8)에 조선을 미국의 군사력으로 무력 침략한 사건인 신미양요(辛未洋擾)로 이 짧은 전쟁에서 조선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미국 해군은 조선군의 대포 등 상당수의 전리품을 함대에 싣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수(帥)자기였다.
당시 미군 측의 기록을 보면 당시 포대에 꽂혀있던 수자기를 조선군 포수 네댓명이 몸으로 꽁꽁 묶어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조선군의 진영이나 배 위에 장군이 있음을 알리는 깃발인 수자기는 그 차체가 위엄이고 힘이고 외침을 막겠다는 장수의 기개가 서린 상징물이다.
'역사의 기록 > 문화재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순신장군의 표준영정과 행장, 가승, 교지, 부산진 순절도 등 (0) | 2013.01.10 |
---|---|
전장(戰場)의 중심에 선 등사기(騰蛇旗) (0) | 2013.01.09 |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술잔-도배(桃盃) (0) | 2013.01.05 |
진주 검암리 운수당에 진눈개비는 내리고(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401호) (0) | 2012.12.27 |
진주와 사천의 경계를 알리는 두문리 이정표석(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79호) (0) | 201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