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김녕김씨 세한재 제단향례 봉행

천부인권 2013. 4. 12. 06:30

 



 

2013411(매년 음력 삼월 첫 丁日) 김녕김씨의 파조인 백촌 김문기공의 제단향례(白村 金文起公 祭壇享禮)를 창원향교의 유림들과 김녕김씨 일족 60여명이 모여 제관(祭官)에는 초헌관 배한성, 아헌관 정수영, 종헌관 강순중이 각각 맡아 창원시 동정동(갓골) 세한재(歲寒齊)에서 봉행(奉行)하였다.

 

 



 

세한재(歲寒齊:세세 년년 굳건이 건재함)를 출입하는 솟을삼문에는 효광문(曉光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새벽 햇빛이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기둥마다 달린 주련은 이렇게 적었다.


 



 

사정재구백년여(斯亭纔構白年餘) 이 정자에 이사한지 벌써 백여년이네

자한판성뇌차소(自恨瓣誠瀨且疎) 스스로 한스러워 꺼리고 미워해 거친 것은 정성 드렸고

천고위종수죽백(千古偉踪輸竹帛) 천고의 조상 큰 발자취 역사에 싣고

일시의담판웅어(一時義膽瓣熊漁) 한때의 정의로운 마음 여러 음식으로 축하 드렸고

지령척강천대감(知靈陟降泉臺感) 신령이 오르내리며 알고 저승처럼 느끼네

괴아유리합포거(愧我流離合浦居) 나는 고향을 떠나 합포에 사는 것이 부끄럽네

만사원무충효외(萬事元無忠孝外) 만사의 으뜸은 충효 밖에는 없는데

긍긍조모정금거(兢兢朝暮整襟裾) 조심스럽게 아침저녁 옷깃을 여민다.


 



 

김녕(金寧)은 김해의 옛 지명인데 시조 휘() 알지(閼智)는 석탈해왕 구년에 닭이 우는 자리에 황금색 궤가 있어 열어 보니 옥동자가 있어 하늘이 보내준 아들로 여겼고, 금궤(金櫃)에서 왔으므로 성이 김씨(金氏)가 되었으며 왕자로 책봉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전한다. 관조 휘 김시흥(貫祖 諱 金時興)은 고려인종 때 묘청(妙淸), 조광(趙匡)의 난을 토평(討平)한 공으로 김녕군(金寧君)에 봉군(封君)되고, 명종(明宗) 때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하여 금녕대도호부(金寧大都護府)로 부임하여 지명을 김녕으로 하고 세거정착(世居定着)하자 본관을 김녕(金寧)으로 삼게 된다. 따라서 본관을 김해로 삼고 있는 김해김씨라 부르는 김수로계와는 구별하기 위해 1884년 예조의 인준을 받아 오늘날 까지 사용하고 있다. 파조 휘 문기(派祖 諱 文起)는 시흥의 구세손으로 단종복위 운동(端宗復位 運動)을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환형(轘刑:수례에 사지를 메고 찢어서 죽이는 형벌)으로 순절하여 현재 사육신의 한명으로 추앙받고 있다.


 



 

세한재를 방문하실 분들은 매월 양력 1310시경에 가면 종중의 며느리들이 계를 하면서 건물도 관리를 하기 위해 문을 연다고 한다.


 




조선의 충절 김문기의 넋을 추모하는 세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