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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계 서응시를 모시는 원계리 증산서원을 가보니

천부인권 2013. 4. 18. 18:35




 

2013417(매년 음력 38)은 창원시 회원구 내서읍 원계증산길 57-11(원계리 523번지) 증산서원(甑山書院)에 배향된 충열공 창계 서응시(忠烈公 昌溪 徐應時 ; 1531)의 향례가 있는 날이었다. 이날 증산서원(甑山書院) 제관에는 초헌관 김찬영, 아헌관 안호영, 종헌관 조기환이 각각 선정되어 예년에 비해 일기가 불순한 관계로 향례 시간을 앞당겨 봉행했다.

 

 



 

내서읍 원계리는 무학산(舞鶴山)이 내려오다가 두산(斗山)에 혈을 맺어 그 아래에 원계리(元溪里)를 이루었다. 마을 앞으로는 청정한 광려천(匡廬川)이 흘러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갖추었으나 요즘에는 마을 입구인 광려천 앞에 높은 유앤아이오르젠 아파트가 건설되어 마을 자체가 꽉 막혀 버린 모습을 하고 있다.

중리공단을 지나 광려천교에 다다르기 전 백마카서비스 건물을 보고 좌회전을 하면 작은 옛길로 진입을 한다. 차량 한 대가 지나는 옛길로 접어들면 아파트의 위용을 충분히 만회하는 다정다감한 느낌을 받게 된다. 커다란 당산나무 옆 공터에 차량을 주차하고 마을의 정취에 빠져들면 돌담장과 오래된 담쟁이덩굴을 만나게 되고 수십년은 됨직한 탱자나무도 보게 된다. 무엇 보다 옛날 공동 우물터가 남아 선조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그 정감이 애틋하나 이제는 마을이 개발되기 시작하여 그 정취들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증산서원 주련

慕先節義第見籩豆有楚 선조의 절의를 사모하면 제행에 초의 굴원을 보게 되고
傳俊詩禮固知絃誦學魯 훌륭한 시례를 전하면 현송은 학로임을 진실로 알게 되네
松露承掌遠舍廬峀之呈奇 솔 이슬 손에 받아 먼 곳에 뿌리면 여산의 기이함 들어내네
柳風拂面平挹甘泉之盈科 버들에 스친 바람 얼굴에 닿아 쉬이 받아드리건만 감미로운 샘물은 웅덩이에 고였다 점차 조금씩 흐르게 되네



 


<소명 배문준(少溟 裵文準) 공의 글>




 

창계선생문집에 실린 가는 길이 어려움이라는 제목의 행로난(行路難) 한 구절을 되새겨 본다.

행로난(行路難) 가는 길이 어려움

출문세로다기(出門世路多岐) 문을 나서니 세상 길 여러 갈래인데

지동지서난지(之東之西難知) 동서로 가도 알기가 어렵구나.

전자복후자명(前者覆後者冥) 앞 사람이 넘어지니 뒤 사람도 아득한데

장야만만무성(長夜漫漫無醒) 긴 밤은 만만하여 깨어나지 못하네.

지장홍보만권(只藏鴻寶萬卷) 단지 큰 보물인 만권을 갈무리하고,

자조영대일편(自照靈臺一片) 영대일편에 스스로 비추노라.


 



 

창계 서응시(昌溪 徐應時公)는 달성서씨(達成徐氏) 현감공파(縣監公派) 후손으로 스승 중봉 조헌선생(重峯 趙憲先生)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할 것을 상소했으나 조정 신료들에 의해 묵살되었고,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조직하였고 이때 공이 스승의 참모역할을 하다 금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를 하여 사적 제105호인 칠백의총에 안치된 인물이다.

 

 증산서원은 창계 서응시를 기리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