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진해 태백동 소나무 보호수-장백송

천부인권 2014. 11. 23. 20:24

 

 

<2014/11/21 진해구 태백동 보호수 장백송>

 

양곡동 보호수인 느티나무 군락을 촬영한 후 그 옆에 있는 칼국수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위성지도로 대략 위치를 간파한 태백동 산84-1번지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옛 마진터널로 향했다. 느긋하게 옛 도로를 따라가면서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되새기며 마진터널을 지났다. 오늘에서야 이 옛 터널 이름이 마진터널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곳은 위치상 창원과 진해를 연결하는 터널인데 생뚱맞게 마진터널이 된 이유를 모르겠다. 당시에는 마산이 7대도시에 속한 도시이다 보니 이름도 없는 창원을 붙여 창진터널로 명명하는 것에 자존심 상했나 보다.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이름을 붙이자면 서울터널이라 하는 것이 더 유명세를 타지 않을까.

 

 

 

 

어째거나 장복산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장복산 임도(林道)의 시작지점 갓길에 주차를 하고 등산을 하는 분들에게 보호수로 지정된 소나무에 대해 물으니 아는 사람들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 지역을 헤맬 각오로 무작정 소나무가 많이 보이는 지역으로 가다보니 다행히 아름드리 소나무가 즐비한 가운데에서도 특출한 크기와 기상을 자랑하는 소나무를 보았다. 주위에는 굵은 곰솔들이 많았지만 이 소나무는 적송이다. 다시 적송과 곰솔의 생태를 파악해 보니 곰솔이 잘 자랐고 적송은 이 보호수 이외에는 특출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도로에 와서 느낀 것이지만 도로변에서 멀지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안내판 하나만 장복산길에서 보호수로 가는 입구에 세웠더라면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을 안내판 하나 세우지 않는 행정에 아쉬움이 남았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20125월에 다른 분도 안내판이 없어 아쉽다는 글을 썼는데 아직도 그대로 인 것을 보니 과연 공무원이라는 사람들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심이 간다.

 

 

 

 

이 태백동 소나무는 2004730일에 명목(名木:이름 있는 나무)으로 관리번호 12-04-27호 보호수로 지정을 했다. 수령 300, 나무높이 22m, 가슴둘레 높이 111cm로 창원시는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 가슴높이 둘레를 재어보니 345cm이다. 어떻게 이런 엉터리 수치가 나왔는지 참 공무원 스럽다는 생각을 다시하게 된다. 다행인 것은 이곳 기록에는 나무의 재원이 없어 엉터리를 알려 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이곳 안내판에는 조선 19대 숙종(1674~1520) 재위 때부터 장복산(長福山)에 우뚝 솟아 일제강점기와 6·25사변의 풍파를 이기고 고장의 역사와 함께 지금의 위치에 살아온 소나무라 시 승격 50년을 맞아 명칭을 공모해서 장복송이라 이름 짓는다고 기록하면서 200591일에 진해시장 김병로, 명명자 배한수라 새겼다. 이름 하나 남기려고 생쇼를 하는 것 같아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이 안내판이 신뢰를 얻을려면 막연히 숙종 재위가 아니라 문헌의 근거를 기록해야 하고, 김병로나 명명자 배한수 등은 금석문에세 삭제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다. 공모를 했다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포함해야 하는 것이지 한명이 주장하는 것을 선택하여 명명하는 것은 이미 뽑아 놓고 공모했다는 의심을 가지게 한다.

 

 

 

 

이곳 보호수 앞에는 자연석에 시를 새겨 두었는데 지은이 김탁환를 새긴 것은 좋으나 맨 아래 작은 글씨로 희호 이정근을 새긴 것은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다. 아마도 글씨를 쓴 사람인 듯 한데 그러면 글씨를 쓴 사람이라고 기록하는 것이 맞다.

 

 

 

 

長福松

지은이 : 김탁환

 

고통과 분노 망각의 무게 이기기 위해 더 자주

더 오래 스스로를 할퀴던 어슴새벽이 있었다.

하루 종일 몸 뒤채고서도 가장 늦게 울음 터뜨리는 저물녘이 있었다.

그때마다 곁에서 어깨 보듬어 주던 나무여!

그 하늘 우러르며 뿌리에서 줄기지나 가지 쭉쭉 뻗어 오른

이곳에서부터 진해시민 푸른 얼굴 웃음꽃 가득 피어나리.

바다보다 깊고 산보다 높게 행복의 길 걸어가리.

 

 

 

 

 

 

<이곳에 안내판을 세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