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출처 : 역사속의 나무 이야기>
옛날에 아들이 태어나면 그 아이의 몫으로 선산에 소나무를 심었고, 딸이 태어나면 텃밭 두렁에 오동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심어진 나무는 그 아이와 평생을 같이하는데 아이가 아프면 그 부모는 아이의 ‘내 나무’에 井華水(정화수)를 떠놓고 병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아이가 성장하여 과거를 보러 갈 때에는 나무에 관띠를 두르고 장원급제하게 해달라고 또 빌었다.
그뿐 아니라 딸이 시집을 가게 되면 '내 나무'인 오동나무를 베어 장롱을 짜 주고, 아들이 죽으면 '내 나무'를 베어 관을 짜서 함께 묻었다. '내 나무'는 이처럼 일생을 아이의 성장과 함께하는 나무이다.
매장문화가 사라진 요즘은 거의 모든 사람이 화장을 하고 선산이나 강가에 그 유골을 버리는데 이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내 나무'를 이용한 樹木葬(수목장)을 이용하게 한다면 산을 푸르게 하고, 나무를 키우는데 일조를 할 것이다.
만약 의령군이나 하동군처럼 인구가 유출되는 지역에는 이런 ‘내 나무’ 갖기 운동을 벌인다면 인구의 유입효과도 있고, 지역의 경제를 살리는데 일조를 할 것이다. ‘내 나무’를 가지게 되는 아이는 ‘내 나무’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될 것이고, 그곳을 방문하는 것은 물론 자신이 죽은 후 수목장의 역할도 할 수 있으므로 높은 가격에 땅 값이 형성 될 것이다.
내가 군수라면 ‘내 나무’를 심을 수 있는 3평 정도의 땅을 분양해 주고, 10년에 걸쳐 분할하여 그 대금을 납부하도록 해 주겠다. 매년 3십만 원만 받아도 10년이면 3백만 원이다. 평당 백만 원에 ‘내 나무’를 심고 가꾸게 되는 효과가 생기는데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 나무’의 주인이 사라지고 관리할 사람이 없다면 환수를 하면 될 것이다. 10년이 지난 후부터는 매년 3평에 대한 세금을 받을 수 있으니 세수확대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내 나무’의 주인에게는 큰 부담이 아니어서 좋고, 군에서는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고, 세수가 증대하는 결과를 가져와 좋은 일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거대한 나무 군락지가 생겨 또 다른 관광자원으로 활용이 가능하다.
‘내 나무’ 갖기 운동이 지금 필요한 것은 내 것이 있는 사람은 극단적 행동을 자제하는 경향도 있고, 내 것에 대한 애착은 긍정적 힘이 되어 나라가 발전하는데 좋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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