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4대강 사업과 낙동강의 현상 그리고 개비리길의 변화

천부인권 2015. 7. 27. 07:57

 

 

 

<2015/7/25 낙동강 본포 다리 아래 녹조가 띠를 이루고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빈번히 발생하는 녹조류 영향과 수질파악을 위해 마창진환경운동연합회원들이 낙동강을 찾았다. 본포 다리 아래에서 강가 모래에 길게 벋은 녹조 띠를 보면서 인간이 자연을 다스린다는 것은 한심한 수준임을 실감한다. 썩어가는 녹조에 미세한 까만 벌레가 모여 또 다른 예술행위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은 처음 겪는 경험이다. 이 검은 생명체에 대해 우리 일행 중 아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 일부를 수집하여 연구실로 보내기로 하였다.

도로에 설치한 자동차의 차선처럼 낙동강의 미세한 모래 위에 녹색의 띠가 끝없이 이어져 있어 녹조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풍경만 본다면 녹색의 띠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녹조 띠와 검은 벌레와 그 사체가 만든 세상>

 

또한 녹조를 분해 또는 먹기 위해 까만 벌레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죽은 사체가 작은 띠를 이루어 녹색의 띠 위에 검은 물감으로 예술 행위를 한 것처럼 매우 아름다운 풍경도 만났다. 낙동강을 파괴하여 얻은 이런 경험들이 미래세대에게는 전해지지 않았으면 한다.

 

 

 

 

<취수장에 녹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물을 뿜는 모습>

 

 

<2015/7/25 여전히 녹조가 사라지지 않은 모습>

 

 

<함안댐의 모습-이명박이 사람을 실어 나를 때에는 사람이 있었으나 지금은 홍보관도 운영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함안댐을 가보니 댐의 물막이 앞에 커다란 잉어와 강준치가 떼로 몰려다니며 헤엄치는 것이 흐르는 강물에서는 보지 못하는 희귀한 현상이다. 연못에 있는 비단잉어가 몰려다니다 인간이 던져 주는 먹이를 먹기 위해 물 위를 배회하듯, 많은 무리를 이루는 것이 일상적 자연의 모습은 아니다. 비상식적인 이런 일들이 4대강 공사 후 특히 댐공사와 관련해서 발생한다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낙동강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도 연구가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면 댐을 만든 사람들이 먼저 이런 현상들에 대해 발표를 하고 연구를 하여 알려 주는 것이 어마어마한 예산을 사용한 것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잉어와 강준치가 수면 위에 유영하는 모습-이런 현상이 왜 일어날까?>

 

 

<2015/7/25 개비리길의 공터였던 곳을 개발한 모습>

 

일행들은 남지읍 개비리길을 걷기 위해 용산마을로 향했다. 남지읍에 있는 낙동강의 넓은 둔치는 한창 땅을 갈아엎고 있어 농사를 짓는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이다. 아스팔트가 끝나는 용산마을 앞에 차량을 주차하고 남강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류지점에서 함안군의 합강정과 반구정, 의령군의 기강나루와 보덕각 이야기를 일행들에게 전했다.

개비리길이란 말은 개()와 비리(벼루)가 만나 하나의 뜻을 이룬 용어로 퍼져나가는 물이란 뜻이고, ‘비리강가나 바닷가의 낭떠러지라는 뜻이다. 둘이 만나 강가의 절벽에 난 길이란 뜻으로 개비리길이 되었다.

개비리길도 자연스런 옛 풍경은 사라지고 곳곳에 편리시설과 안전시설을 설치하여 인공의 시설물들이 들어섰다. 옛길의 정취는 사라지고 인간의 욕망이 자리한 개비리길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낙동강에 갑자기 생기기 시작한 안전시설과 편리시설이 도전과 성취에서 오는 인간의 건강한 정신을 망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인간의 생활에서 도전 정신과 안전시설은 자연을 만나면 상반된 형태를 보인다. 우리가 안전을 생각하여 위험요소가 있는 행위는 자제를 하고, 위험에 노출 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시설을 한다. 그렇지만 도전이란 안전하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나이가 어린 아이 일수록 호기심도 많고 모험심도 많다. 그래서 안전 보다는 도전을 즐기고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한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을 보면 항상 위험하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하지 말라고 금지를 시킨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즐기는 재미를 빼앗는 것이다. 자연에서 완벽한 안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자연이 주는 시련을 즐기며, 이겨내는 정신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오히려 필요하다. 인간이 자연을 찾는 것은 자연이 주는 고통을 이기고 모험을 통하여 호연지기를 얻기 위함이다.

 

 

 

 

<길의 운치를 살리지 못한 말둑-안전하라고 설치한 것이 안전하지 못한 시설일 수도 있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