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8/6 우암리 포함 7개 마을 전경>
민주엽나무가 마을의 신목으로 나란히 서있는 대산면 牛岩里(우암리)는 낙동강의 배후 습지로 이루어진 대산평야를 경작하기 위해 고립된 구릉 산지인 월림산(79m)의 산록을 중심으로 우암마을·덕현마을·월림마을·신곡마을·용등마을·동곡마을·중포마을로 형성된 7개의 자연마을 중 하나이다. 문화 유적으로는 우암리 고분군, 우암리 당목, 우암리 지석묘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聚落(취락)은 남향·동향·남동향을 선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우암리는 대산평야가 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경지와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주로 서사면(西斜面)에 마을이 위치하였다. 우암리의 이름은 대산면 우암리 132-2번지, 마을 앞 논 가운데에 있는 소가 누워있는 모양의 우암리 지석묘(牛岩里 支石墓)에서 유래되었다는 설도 있고, ‘동쪽에 있는 바위’를 뜻한다는 설도 있지만 우암리 지석묘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 되었다는 설이 더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2015/8/7 우암리 지석묘가 위치한 논을 배경으로 한 우암리 풍경>
우암리 지석묘는 기반식 지석묘로, 상석 윗면에는 너비 5~10㎝의 19개 성혈(性穴)이 파여 있다. 그 가운데 가장 큰 것은 너비 10㎝에 깊이 6㎝이다. 상석의 크기는 길이 163㎝, 너비 174㎝, 두께 50㎝이다. 현재 벼를 심어 지석묘의 모습은 볼 수 없다. 가을이 지난 후 이 마을에 다시 방문하여 수형이 드러난 모습과 지석묘를 사진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2015/8/6 우암마을 풍경>
<2015/8/6 우암리 민주엽나무가 보이는 풍경>
牛岩里 堂木(우암리 당목)이 위치한 곳은 대산면 우암리 184번지 앞 작은 구릉의 정상부 이다. 두 그루는 정상에 심었고, 한그루는 4m 떨어진 약간 아래에 정상의 두 그루보다 작은 모습으로 줄기에 많은 상처를 입은 체 서있다.
정상부에 서있는 민주엽나무의 나이는 150년 정도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266cm와 230cm이며, 약간 아래에 있는 나무는 가슴높이 둘레가 130cm 밖에 되지 않는다. 이 모든 나무는 응회암의 암반 위에 얕게 퇴적된 흙에 뿌리를 내리다 보니 제대로 성장 할 수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야 할 커다란 뿌리가 지상에 노출되어 썩은 부분이 많이 발생하니 나무줄기 중앙부분도 썩어가는 중이다. 그러다보니 나무의 키도 높게 자라지 못하고 낮은 편으로 10m 남짓이다.
우암마을 사람들은 정상부에 서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마을을 수호하는 神木(신목)으로 여기는데 당산할배(당산할아버지), 당산할매(당산할머니)라 부른다. 우암리에서는 과거 당산나무에 동제를 지냈으나 일제강점기부터 동제를 지내지 않은 것으로 짐작된다. 우암마을 주민에 따르면 나이가 가장 많은 시집 온지 60년이 되신 어르신이 시집 올 당시에도 동제를 지내지 않았다는 말을 들었다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동제를 지내지 않은 지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5/7/11 우암리 민주엽나무 노가수 탐방>
그러나 현재까지도 당산나무는 신목으로 여겨 마을의 대소사(단체 관광 등)가 있을 때 간단히 제물을 차려 마을의 무병과 안녕을 기원하고 있으며, 마을 주민들이 개인적으로는 치성을 드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우암리 당산나무에는 당집은 없으나 당산나무 옆에 한국불교 미륵종 光明寺(광명사)라는 절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절집은 대산면 부북리 팽나무가 있는 곳과 마찬가지로 비구니승이 거주하고 있으면서 이 당목을 관리하고 있다.
우암리와 마주하는 동읍 석산리에는 동산 김명윤(東山 金命胤 : 1565~1609)선생이 살아생전 동산정에서 바라 본 팔경을 시로 남겼는데 그 중 ‘우암의 저녁봉화’ 풍경을 남겼으니 소개를 한다. 당시 백월산 자락의 동산정에서 볼 수 있는 봉홧불은 노무현 대통령을 낳은 자암산(子庵山)[또는 紫岩山으로도 쓴다]에서 오는 것이다. 자암산은 지금의 진영읍 봉화산(烽火山)에 해당한다. 봉화는 유사시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는데, 당시는 전란 직후라 우암리에서도 간이 봉화를 올렸는가 보다. 그렇다면 우암의 봉홧불은 남으로 분산(盆山)에 응하고 북으로는 밀양 남산이 응하도록 되어 있었을 것이다
동산정 선생은 1583년(선조 16)에 계미과(癸未科)에 등제하였으며, 7년 후 학봉 김성일선생(鶴峯 金誠一先生)이 부사(副使)로 일본에 들어갈 때 공을 천거하여 종사관(從事官)을 삼았다. 임금께서 공이 일본의 풍토속(風土俗) 및 실정(實情)과 위장(僞裝)한 기록을 보시고 파주목사(坡州牧使)로 제수했으며, 충주목사로 재임 중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왜군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원종일등훈(原從一等勳)에 제수 하였다.
동산정 팔경(東山亭 八景)
牛巖夕烽(우암석봉) 우암의 저녁 봉화
塞外傳光倚杖看(새외전광의장간) 지팡이 짚고 변방의 봉화 오는 것을 보니
疑然星出暮雲端(의연성출모운단) 구름인지 별빛인가 의심을 했네.
方今聖代無邊警(방금성대무우경) 오늘날 태평성대에 변방이 조용하니
但願年年報是安(단원년년보시안) 다만 해마다 편안한 소식 전해오기 바라네.
<2015/8/6 민주엽나무 열매>
민주엽나무는 평남 이남에서 자라는 우리나라 특산종 중 하나이며, 주엽나무속에 속한 4종 중 하나이다. 기준 종인 주엽나무는 나무줄기에 굵은 가시가 돋아 있어 민주엽나무와 구별 되고, 조각자나무와는 가시뿐만 아니라 열매의 모양이 달라 구별을 한다.
잎은 호생하며 길이 12-22㎝로서 1-2회우상복엽이고 소엽은 5~8쌍이며 찌그러진 난상타원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둔두 원저이며 길이 3-5.5cm이지만 길이 9.5cm, 나비3cm인 것도 있고 가장자리에 파상의 톱니가 있다. 2회 우상복엽은 4쌍의 잎에 5-7쌍의 소엽이 달리며 엽축 표면에 홈이 있고 다소 날개같이 된다.
꽃은 잡성 일가화로서 6월에 피며 지름 6mm정도로서 연녹색이고 총상화서에 달리며 꽃받침잎과 꽃잎은 각 5개이고 수술은 9-10개이며 길이 4-5mm로서 녹색이고 수술대는 10개 정도로 털이 있다.
열매는 길이 23㎝, 넓이 3㎝의 납작한 협과로 꼬투리는 비틀려서 꼬이며 10월에 성숙한다. 열매의 내피속은 잼같으며 달콤하다.
높이가 20m에 달하고 굵은 가지가 나와서 퍼지며 새가지는 녹색이고 피목이 산재하며 군데군데에서 자갈색의 얇은 막이 벗겨지고 소지 같은 편평한 가시가 있다. 원줄기에 가시가 없고 노목일수록 세로 방향으로 홈이 파여 있다. [출처 : 풀베개]
북측의 려강출판사(驪江出版社)에서 발행한 동약사참고집(東藥師參考集)에 의하면 콩과에 속하는 주염나무(Gledtschia Koreaiensis)의 싹을 말린 것이 ‘주염나무 싹’이다. 봄철에 돋아나오는 잎을 뜯어서 햇볕에 말린다. 비슷한 식물로는 조각나무, 자귀나무, 아재비과줄나무, 족제비싸리 등이 있다. 동약의 모양의 잎은 어두운 풀색이고 부드러운 털이 있다. 냄새는 약하며 쓴맛이 있다.
어린 줄기, 잎, 열매, 씨에는 알칼로이드가 들어 있다. 잎에는 아스코르빈산, 목부에 플라본 화합물인 프스틴, 피세틴, 글레디트신, 열매에 글레딛찌아 사포닌, 조지방, 탄닌질, 안트라키논 등이 들어있다. 가래약으로 기관지염에 쓴다. 사용 방법은 트리아칸틴 염산염을 0.05~0.1g씩 하루 3번 먹는다.
주엽나무속(Gleditsia) 4종
민주엽나무 (Gleditsia japonica for. inarmata Nakai)
아자비과즐 (Gleditsia japonica var. stenocarpa (Nakai) Nakai)
조각자나무 (Gleditsia sinensis Lamarck)
주엽나무 (Gleditsia japonica Mi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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