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김달진의 삶을 지켜본 진해구 소사동 푸조나무

천부인권 2015. 5. 26. 07:12

 

 

<2015/4/26 진해구 소사동 푸조나무 노거수>

 

진해구 所沙洞(소사동)은 김달진문학관과 金達鎭(김달진)생가가 있어 유명해진 마을로 소사동(所沙洞)馬川洞(마천동)의 서쪽 말내건너 벌판에 사람이 살게 된 동네이다. 동네 뒤에는 높지 않은 닭메가 있고 서쪽에는 웅동 수원지가 있었다. 원래 여러 마을이 있었으나 倭國(왜국)해군이 수원지를 만들면서 마을들을 모두 밀어 현재는 소사동이 웅동 1동의 가장 서쪽 동네가 되었다.

소사동은 가남동· 대끼· 더문이· 덤말· 심동· 죽항 등의 옛마을과 개끼들·둔전·뒷덕·바닷들·밭등·봉천지 등의 들판을 비롯하여 공굴보·모래등보·사내보·새보·포구나무보 등의 보()가 있다. 또한 구천동(九川洞납닥골·벌통골·아홉내골·주인네골 등의 골짜기와 벌통바우·진신바우 등의 바위가 있으며 음지 고개·소사 저수지·딹매산·소사천이 있다. 아홉내골은 아홉 줄기의 개울이 흐른다는 데서 이름 한다. 이처럼 아홉내골의 개울물을 모은 것이 웅동저수지이고 지금도 진해공창의 식수로 공급되고 있다.

 

 

 

 

소사 마을은 김달진 시인, 신상철 수필가, 김형술 시인, 이혜화 시인, 나순용 수필가, 정의화 국회 의원, 문석윤, 독립운동가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달진은 일본 경찰을 피하기 위해 유점사를 떠나 북간도로 갔다가 광복 이후 서울로 돌아와 동아일보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곧 짧은 기자 생활을 정리하고 1946년 교직에 몸담아 경북여자중학교, 진해중학교를 거쳐 경상남도 창원군 남면중학교[현 창원남중학교] 2대 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리고 1960년 창원군 남면중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임하였다. 1962년 동양불교문화연구원장을 역임하였고, 1964년 이운허(李耘虛)를 법사(法師)로 모시고 동국대학교 동국역경원(東國譯經院) 심사위원으로서 고려대장경 역경 사업을 펼쳤다.[출처 : 김달진문학관]

 

 

 

 

김달진 생가 안채마루에 걸터앉으면 담장너머에 커다란 노거수를 보게 되는데 소사동 사람들은 정월 보름에 이 나무 아래에서 당산제를 지내오고 있다. 소사마을 당산나무는 푸조나무로 진해구에서 노거수로는 유일한 수종이고, 가장 오래되었으며, 가장 큰 나무이다. 소사동 푸조나무 노거수의 나이는 마을의 형성시기와 비슷한 300년 정도이고, 가슴높이 둘레는 410cm이며, 높이는 20m정도 이다.

 

 

 

 

이 푸조나무는 마을길 보다 120cm정도 높은 위치에 뿌리를 내리고 있고, 줄기 아래 부분은 울퉁불퉁한 혹이 발달해 있으며, 외과수술을 받은 부분은 개구리 모양을 하고 있어 귀엽기도 하다.

 

 


<진해구 소사동 41-2>

 

 

 

<개구리를 닮은 듯한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