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보호수와 노거수

마산만의 신목 성덕암 음나무 노거수

천부인권 2015. 9. 2. 18:00

 

 

<2015/8/31 추산동 성덕암 음나무 노거수와 산신각 모습>

 

합포구 추산동 산 1번지는 조계종 제14교구본사 범어사의 말사인 成德庵(성덕암) 산신각이 위치해 있다. 1933년 창건된 成德庵(성덕암)은 합포구의 주산인 斗尺山(두척산,761.4m) 남쪽 기슭에 돌출한 낮은 야산인 環珠山(환주산, 143.8m)의 서남쪽 골짝의 8부 등성이에 있으며, 남쪽으로 마산만을 북동쪽으로는 盤龍山(반룡산,328m)과 창원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환주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 큰 바위로 만든 환주가 산 정상부에 원을 그리며 세워져 있는 곳이다. 그리고 바로 아래에 마산만의 바다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신앙 대상인 1,000년 이상 되는 신목이 있다. 예로부터 환주산 일대를 지역민들은 공신당산(公神堂山)’이라고 불렀는데 공신(公神)은 공적 제당을 의미한다. 이는 절이 창건되기 이전에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 환주산에 있었음을 알게 하는 것이다.

 

 

 

 

<옛 산신당 터에 위치한 불상 26기>

 

성덕암이 창건되기 전에는 신목 바로 아래 산신각과 용왕전이 있었고, 산신당의 규모는 6.6정도이고, 내부에는 좌 불상 1폭과 산신도 1폭이 있었다고 한다. 옛 산제당 자리는 현재 산신각과 용왕전 사이의 자리로 배를 타고 나가는 어부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신도들이 모신 일본식 석조 불상 26기가 부조형태로 봉안되어 있는 곳이라 한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한 가정 원불 모시기 풍습을 엿볼 수 있는 흔치않은 사료적 가치를 갖고 있다. 현재의 산신을 모신 산령각은 창건 당시 새로이 조성하여 신목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음나무 노거수 아래에 있는 산신각>

 

마산은 환경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바다에 의존할 수밖에는 곳이다. 창원부의 배후에서 서울까지 뱃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다 보니 고려 때부터 석두창이 설치가 되었다. 그러나 바다는 인간에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조운과 어업의 발전은 마산을 먹여 살리는 길이라 자연적으로 무역로를 개척하고, 상업의 길로 가게 하는 힘이었다. 그러다보니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을 수 있는 신앙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마산의 정신적 뿌리가 되는 성신대제이다. 1760년 조창의 설치로 안전운행을 기원하는 별신굿이 생겼고, 이 축제가 발전을 하여 집단적 성신신앙의 형태로 제도화 된 것이다.

 

 

 

<신목 음나무와 뿌리에서 나온 어린 묘목>

 

성신대제를 지내기 위해 신목이 필요한데 이를 베어 오는 곳이 두척산 아래의 환주산이다. 따라서 자연히 이 환주산에 성황당을 설치하고, 사람들은 공신당산이라 불렀다. 이 산신당 주위에는 푸조나무 5그루가 신목인 엄나무를 에워싸듯 자라고 있어 신비롭다. 실재로 산신당 위에는 고사하기 시작한 거대한 엄나무가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방리 엄나무보다 더 굵다.

 

 

 

<신목 음나무와 푸조나무>

 

성덕암은 2007613일 대웅전이 불타면서 그 여파로 인근에 아름드리 소나무가 죽어버린 사건이 있다. 마산만의 신목이라 불리는 환주산 엄나무는 산신당의 절개지에 위치를 하여 나무 둘레를 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진에서 보듯이 그 위용은 대단하다, 인근에 엄나무가 없다는 것은 처음부터 신목을 만들 목적으로 귀신을 쫓는다는 엄나무를 심었을 가능성도 있다. 엄나무는 줄기 중앙이 이미 썩어 비어 있고, 일부의 줄기는 죽었다. 그러나 마산의 신목답게 아직도 생명력을 자랑하고 있다.

 

 

 

 <2015/8/31 환주산 신목의 위용>

 

이 신목에는 전설이 전해 오는데 임진왜란 때 이곳 산제당으로 와서 나라와 백성을 구해 달라고 기도하였다는 구전이 있으며, 1950년 늦은 봄 어느 날 갑자기 이 고목나무에서 붉은 물이 흐르기 시작하여 2~3일 동안이나 계속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6·25 전쟁이 일어났다고 한다.

또한 산제당에 자리한 음나무 목신은 성덕암이 들어선 뒤에도 오랜 기간 민간 신앙의 제단으로 기능을 하였고, 목신각 아래 용왕전 샘은 물의 영험이 알려져 환자들이 워낙 많이 찾아오자 인위적으로 매웠다한다. 용왕전의 샘물이 나던 곳 위에는 그 약수를 관장하는 거북이 석상이 놓여 있다.

 

 

 

 

 

<2015/9/1 용왕전과 거북>

 

 

<약수라는 샘과 이를 지키는 거북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