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가 통합시가 된 후 지역의 갈등만 더 커지고 바뀐 것은 거의 없다. 그 중에 바다의 이름은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는 것을 바다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天子峰(천자봉)에 앉아 생각해 본다.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년 조선시대에는 창원시 앞 바다의 이름이 지금과 달랐다. 물론 행정구역의 중심도 달랐기 때문에 바다의 이름도 달랐을 것이다.
지금 천자봉에서 바라보는 저 바다를 요즘에는 진해만과 마산만이라 한다. 옛 조선시대에는 웅천 앞 바다를 웅천만, 지금의 진해만을 합포만, 마산만은 남포만, 진동 앞바다를 진해만 등으로 불렀을 것이다. 현재의 진해만이나 마산만 등의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지역의 지명을 바꾸어 만든 지명이다. 그러므로 일제의 통치수단으로 만들어진 이름을 지금은 버릴 때가 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3개의 시가 창원시라는 이름으로 통합이 되었고, 행정명이 하나로 통일 된 지금에는 그에 걸맞은 지명을 붙이는 것이 통합의 의미도 될 것이고, 민족의 정체성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가는 행위일 것이다. 행정 구역이 바뀌었으니 그에 알맞게 누구나 쉽게 인식할 수 있는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일일 것이다. 임진난 당시에 마산이란 곳은 창원 땅 龍馬山(용마산) 끝자락 바다가로 지금의 수출자유무역지역 제2교가 건설된 앞쪽의 작은 어촌에 불과 했다. 따라서 창원의 앞바다는 진해만과 마산만이란 왜곡된 이름은 없애고, 창원만이라 하는 것이 통합의 결과물이고, 화합의 의미가 된다고 생각한다.
창원만의 섬들은 대다수가 무인도 이다. 유인도에서 무인도가 된 것은 군사적 목적으로 민간인들을 섬에서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현재 유인도로 남아 있는 섬 중에 實利島(실리도)가 있다. 이 실리도의 이름에는 슬픈 전설이 전하는데 “아득한 옛날에 원전에 살았던 어느 과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 섬에 조개를 캐려고 갔다가 물이 차는 바람에 건너오는데 정신이 팔려 외동아들을 깜빡 잊고 자기만 건너 왔다. 그러한 사연으로 두 다리를 뻗고 통곡을 하면서 아기를 부르고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래서 ‘슬픈 섬’이라고도 한다.”
섬의 면적은 19만 9086㎡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750m, 동서의 너비가 약 750m로 남북과 동서의 길이가 거의 동일한 비교적 규모가 큰 유인 도서이다. 해발 고도는 85m이고 해안선의 길이가 2.8㎞이다. 실리섬은 육지인 구산면 심리 원전마을에서 남동쪽으로 0.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1개의 자연 부락에 52세대, 132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러일 전쟁 때 러시아 해군의 주둔지였으나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함으로써 일본에 빼앗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인들의 물탱크, 탄약고와 같은 흔적이 남아 있었다.[출처 : 디지털창원문화대전]
壬辰年(1592년) 음력 5월 7일(양력 6월 16일) 이순신이 올린 장계에는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수군이 거제 옥계에서 왜선을 격파하고, 이어 거제 구영으로 옮겨 쉬고자 하였으나 오후 4시경 구영의 맞은편 웅천 합포(지금의 진해 합개)에 적선 5척이 있어 모조리 격파한 후 창원 땅 남포에서 밤을 지냈다.’고 기록한다. 그러한 승리의 격전지가 천자봉에서는 지척에 보인다.
蠶島(잠도)는 진해구 안곡동에 속한 섬으로 예전에는 무인도 였으며, 해군 포사격 목표물이었던 섬이다. 아직도 국가 소유의 섬이나 요즘 무단으로 점유하여 사람이 살고 있다. 이곳 잠도에는 선사시대와 삼국시대의 유물들이 산포해 있는 것으로 창원 대학교 박물관에서 발표를 했다. 잠도라는 이름은 섬의 모양이 누에를 닮았다고 하여 잠도라 부른다.
진해구 안곡동에서 남쪽으로 6.5㎞, 명동 신명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5.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는 유인 도서이다. 초리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2.3㎞, 부도에서 동남쪽으로 3.8㎞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섬의 면적은 0.202㎢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550m, 동서의 너비가 약 930m로 남북보다 동서의 길이가 훨씬 긴 규모가 큰 유인 도서이다. 멀리서 보면 섬이 2개의 독립된 섬처럼 보이며 동쪽 섬의 봉우리는 45.6m이고, 서쪽 섬의 봉우리는 34m이다.
草理島(초리도)는 『신증 동국 여지 승람』에 ‘초리도(草里島)’로 나오고, 영조 때의 읍지에는 ‘초리도(草理島)’로 나오며, 「비변사지도」에는 ‘초립도’로 기록되어 있어 각기 다르게 표기되어 있다. ‘초리도’의 어원은 무엇이라고 밝히기 어려우나 ‘초립도’라고 한 것은 섬의 형상을 마치 삿갓 모양이라고 본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섬의 면적은 5만 7227㎡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270m, 동서의 너비가 약 1.2㎞로 남북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무인 도서이다. 멀리서 보면 섬이 3개의 독립된 섬처럼 보이며 전체적인 모양이 호미 모양을 하고 있다.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2.6㎞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다. 소쿠리섬에서 북서쪽으로 약 1㎞, 웅도에서 서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무인 도서로 사유지로 알려져 있다.
熊島(웅도)는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 있는 섬으로 곰을 닮은 지형이라 ‘웅도’로 차자 표기하였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다. 섬의 동남간에 지네 발자국 같은 단구가 있어서 “지네가 용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속설도 있다. 토끼를 기른 적이 있어서 ‘토끼섬’이라고도 하며, 교통부 수로국의 지도에는 ‘토끼섬’으로 표기되어 있다. ‘웅도’라는 섬 이름은 1872년(고종 9) 비변사의 지도에 기록되어 있다.
섬의 면적은 1만 413㎡이며, 장축의 길이가 약 375m, 너비가 25~200m로 밥풀을 11시 방향으로 놓은 모양의 무인 도서이다. 섬의 최고봉은 55m이고 북쪽에 있는 소쿠리섬과 간조 시 사주로 연결된다. 사주의 길이는 250m, 너비는 25m에 이른다.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쪽으로 2㎞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0.75㎞, 초리도에서 동쪽으로 1.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무인 도서이다.
소고도라고도 불리는 소쿠리섬은 소쿠리를 닮은 지형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것으로, 한자로는 ‘궤도(簣島)’로 표기하고 있다. ‘소쿠리와 삼태기가 꼴이 비슷하여’ 삼태기 ‘궤(簣)’를 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섬의 면적은 10만 8612㎡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250m, 동서의 너비가 약 500m로 남북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무인 도서이다. 동서의 두 개의 봉우리로 구성된 섬으로 서쪽의 봉우리는 높이 44m, 동쪽의 봉우리는 41m이다. 남쪽에 있는 웅도와는 간조 때 사주로 연결된다.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5㎞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0.5㎞, 초리도에서 동쪽으로 1㎞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무인 도서이다. .[출처 : 디지털창원문화대전]
亡蛙島(망와도)는 이름에 유래한 망와도와 쥐도 그리고 소쿠리섬에 얽힌 설화가 전하는데 섬의 생긴 모양이 마치 말이 도약하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망와도’라 하였다고 전한다.
즉 쥐도(鼠島)에 있던 쥐가 앞쪽의 소쿠리섬에 있는 먹이를 보고 달려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큰 망아지가 달려오고 있었다. 깜짝 놀란 쥐는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버렸다. 그래서 쥐도는 쥐가 웅크리고 앉은 모습과 같고 망와도는 무엇인가를 향하여 말이 뛰려고 하는 모습과 같다고 한다.
<천자봉에서 바라본 행암 일대>
<매립된 모습의 수도, 송도, 연도 모습>
<제포성지와 괴정마을-괴정마을은 삼포왜란의 중심지인 왜관이 있던 자리이다.>
<명성황후가 백일간 머물렀다는 백일마을과 동천을 따라 형성된 논 모습>
<천자봉에서 바라본 진해구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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