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섬 여행과 낚시

바닷길이 열리는 소쿠리섬(소고도)과 곰섬 그리고 전설

천부인권 2015. 11. 3. 09:49

 

 

<2015/9/24 천자봉에서 본 소쿠리섬>

 

명동 신명마을 앞 바다에는 굿지남찌거리섬과 모자섬이라고도 불리는 메주섬을 비롯하여 벗섬(友島)과 소쿠리섬(소고도곰섬(熊島음지도(陰地島지도리(地道里초리도(草理島) 등의 섬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순 우리말과 글로 불리던 섬의 이름들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식 한자 지명으로 바뀐 지명들이 나타나고 현재까지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 곳이 많다.

그러한 측면에서 소쿠리섬은 지도에서는 일제가 만든 소고도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지만 이곳 주민들이 알고 있고, 부르는 이름은 순 우리말인 소쿠리섬으로 남아 있음은 우리말의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민간 어원에서 소쿠리를 닮은 지형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소쿠리섬은 한자로는 궤도(簣島)’로 표기하고 있다. ‘소쿠리와 삼태기가 꼴이 비슷하여삼태기 ()’를 쓴 것으로 생각 된다.

 

 

 

<2015/10/10 연도 가는 도선 위에서 본 곰섬 소쿠리섬 초리도>

 

소쿠리 섬의 면적은 108612이며, 남북의 길이가 약 250m, 동서의 너비가 약 500m로 남북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무인 도서이다. 동서의 두 개의 봉우리로 구성된 섬으로 서쪽의 봉우리는 높이 44m, 동쪽의 봉우리는 41m이다. 남쪽에 있는 웅도와는 간조 때 사주로 연결되어 바닷길이 열린다. 사주의 길이는 250m, 너비는 25m에 이른다. 섬의 북동쪽 해안에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해 있고, 북쪽 해안에는 자갈 해안이 넓게 나타난다. 남쪽 해안에는 모래, 자갈 해안이 좁게 나타나고 있다. 식생은 주로 20여 년생의 곰솔림이 서쪽 봉우리에 잘 발달되었고, 동쪽 봉우리는 칡이 억새와 뒤엉켜 발달되어 있다.

 

 

 

<2015/9/25 명동 방파제에서 본 소쿠리섬과 곰섬>

 

 

소쿠리 섬은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서쪽으로 1.5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0.5, 초리도에서 동쪽으로 1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큰 무인 도서이다. 과거 멸치잡이 어민들이 한 때 거주하여 섬의 북쪽 해안에는 멸치잡이와 멸치 가공을 위하여 어민들이 지어놓은 임시 가건물이 지금은 훼손된 채로 방치 되어 있다.



 

 

이곳에 언제부터인가 노인 한분이 개 한 마리를 키우며 거주를 하고 있는데 여름철 피서객들이 남겨둔 쓰레기를 정리해 주는 댓가로 돈을 받고 있다. 간조 시 남쪽의 곰섬 사이에 바닷길이 열려 걸어 다닐 수 있으며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특히 바닷물이 깨끗하고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신명마을에서 정기적으로 선박이 운행되고 있어 앞으로도 많은 관광객들이 이용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15/10/27 신명마을에서 동섬을 돌아서 가는 배 위에서 본 동섬 모습>

 

 

<2015/10/27 홀로 소쿠리섬으로 가게 되니 작은 선박을 이용한다>

 

 

<2015/10/27 음지연륙교 아래를 지난 음지도 풍경>

 

 

<2015/10/27 정면에 보이는 소쿠리섬과 곰섬>

 

백선과 소쿠리섬의 전설

자연의 신비한 현상인 곰섬과 소쿠리섬이 썰물로 인해 저조 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리니 이러한 곳에 전설이 없을 수는 없다. 이 전설은 백선이라는 여인이 한 지아비만 바라보는 지순한 사랑과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지명 유래담이다.

옛날 곰섬에 막쇠라는 순박한 어부가 살고 있었다. 노총각으로 지내다가 뒤늦게 마을에서 홀로 살던 마음씨 착한 처자와 결혼하여 딸을 하나 두었는데 얼굴이 청초하고 눈썹이 긴 것이 백선꽃을 닮았다 하여 백선이라 불렀다.

 

그런데 백선의 모친은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백선의 나이 어언 18세가 되자 그 아름다움은 근동에 자자하게 퍼져 마을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막쇠에게 서로 백선을 달라고 청혼을 하였지만 백선은 아무도 모르게 곰섬의 큰 부자이며 그의 아비가 타는 배의 선주 아들인 가우리와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가우리는 어려서부터 배를 잘 다뤄 백선을 태우고 곰섬 앞의 작은 섬으로 가서 아무도 모르게 두 사람만의 사랑을 나누었다. 두 사람의 사랑이 하루하루 깊어가던 어느 날 막쇠가 타던 배의 선주는 자신의 아들이 천한 막쇠의 딸과 만나는 것을 알고는 막쇠를 불러 백선을 자신의 아들과 만나지 못하게 하고 어길 때에는 자신의 배를 타지 못하게 할 것이며, 곰섬에서도 살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협박을 하였다.

 

막쇠는 자신의 딸이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는 사람이 가우리라는 말을 듣고 반대하려 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딸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자신이 타던 배도 더 이상 타지 않고 백선과 함께 굴과 조개를 잡아 어렵게 연명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원히 변치 않을 것만 같던 사랑도 양반 댁 규수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부모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가우리는 결국 백선에게 이별을 고했다. 백선은 너무나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실어증을 앓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백선의 뱃속에는 사랑하는 가우리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주는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해 곰섬 앞 무인도에 백선 부녀를 가두어 버렸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배를 안고 건너편 곰섬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며 지내던 백선은 얼마 후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다. 점차 아이가 자라게 되자 멀리서나마 아이를 가우리에게 보여줄 일념으로 바닷가에 나가곤 하였다.

 

이 사실을 눈치 챈 가우리의 아내는 시아버지께 이 사실을 고하니 아이마저도 품에서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다. 상심한 백선의 아버지도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 버리고 섬에는 백선 혼자 남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을 그리워하던 백선은 단 하루만이라도 바닷길이 열려 자신의 아이를 보게 해 달라고 매일 새벽 용왕님께 기도를 올리기 시작하였다. 이에 감동한 용왕은 마침내 백선의 꿈에 매달 보름에 한 번 바닷길을 열어 주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바닷길이 열리기로 한 날 백선은 자신이 아이에게 줄 음식과 손수 지은 옷을 소쿠리에 가득 담아 바닷가에서 바다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바닷길이 열리지 않은 시각 곰섬 저편에서 가우리 부부와 자신의 아이가 육지로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소리를 질러 불러 보고자 했지만 이미 말을 할 수 없는지라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꾸만 아들의 모습은 멀리 사라져 자고 있었다. 백선은 멀리서나마 자식을 볼 수 있는 날이 마지막이라는 걸 깨닫고는 바다로 뛰어들어 그만 죽고 말았다.

 

이내 약속했던 시간에 물이 빠지면서 바닷길이 곰섬과 무인도에 열리게 되고 이를 이상히 여긴 가우리가 곰섬에 들어와 보니 덩그러니 놓여 진 소쿠리에 갖은 음식과 옷가지만 남아 있을 뿐 백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가우리는 백선이 자신 때문에 목숨을 끊게 되었음을 알고 자신도 바다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백선의 지순한 사랑과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을 기려 그 섬을 소쿠리섬이라 부르고 바닷길이 열리는 날이 되면 모두들 소쿠리를 하나씩 들고 가서 그곳에서 조개와 굴 등을 따서 사랑하는 부모와 아이들에게 먹이는 풍습이 생기게 되었다.[출처:2008 진해 스토리]

 

 

<2015/10/27 먼 거리에는 갈미도와 저도를 있는 거가대교 모습>

 

 

<2015/10/27 벗섬이라 불리는 우도>

 

 

<2015/10/27 이제 아무도 없는 소쿠리섬의 선착장이 보인다.>

 

 

<2015/10/27 도선은 떠나고 홀로 소쿠리섬 탐사를 시작할 차례다>

 

 

<2015/10/27 소쿠리섬 선착장에서 바라 본 풍경>

 

 

<2015/10/27 멸치막이 있을 때 사용하던 파손된 방파제 모습과 소쿠리섬 풍경>

 

 

 

예전에 이 소쿠리섬을 해수욕장으로 개발하려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소쿠리섬은 섬에서는 수심이 낮아 보이나 섬과 조금만 떨어지면 수심이 깊어 모래를 넣어서 해수욕장을 만든다는 것이 상당히 어렵고 바다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어 지금은 이런 상태로 보존하고 있다.

 

 

 

 

 

야자수 모양의 기둥은 샤워를 할 수 있는 수도물이 나오는 시설이고, 그 옆의 돌고래를 만들어 둔 것은 수돗물를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시설이다.

 

 

 

 

선착장을 중심으로 우측에도 화장실과 음수대, 샤워시설을 해 두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햇볕이 찬연하여 섬 탐사를 위해 무거운 짐은 선착장에 그대로 놓아 두고 거제도가 보이는 동쪽 언덕을 넘어 갔다.

 

 

 

 

이곳에 해수욕장을 건설하면 관리를 할 수 있도록 관리사를 지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섬의 두 봉우리 사이로 낮은 언덕이 형성 되어 있고 이곳을 통하여 동쪽으로 갈 수 있다. 인기척을 느낀 꿩 두마리가 푸더덕 날아 올라 순간 깜짝 놀랐던 기억이 새롭다.

 

 

 

 

소쿠리섬에서 곰섬으로 가는 바닷길을 열어 주는 곳엔 만조가 되어 떨어진 섬으로 분리가 된 모습이었다.

 

 

 

<2012/8/19 바닷길이 열린 곰섬으로 사람들이 건너고 있는 모습>

 

곰을 닮은 지형의 섬이어서 熊島(웅도)’로 표기하였다는 민간 어원설이 있다. 섬의 동남간에 지네 발자국 같은 단구가 있어서 지네가 용이 되어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속설도 있다. 토끼를 기른 적이 있어서 토끼섬이라고도 하여 교통부 수로국의 지도에는 토끼섬으로 표기되어 있다. ‘웅도라는 섬 이름은 1872(고종 9) 비변사의 지도에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섬의 면적은 1413이며, 장축의 길이가 약 375m, 너비가 25~200m로 밥풀을 11시 방향으로 놓은 모양의 무인 도서이다. 섬의 최고봉은 55m이고 북쪽에 있는 소쿠리섬과 간조 시 사주로 연결된다. 사주의 길이는 250m, 너비는 25m에 이른다. 섬의 남쪽 해안에는 8m 높이의 해식애가 발달하고, 해식애 사이사이에 해식동이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해식애 아래에 파식대가 좁게 발달하고 있다. 섬의 북서쪽과 북동쪽에는 자갈 해안이 발달해 있다. 곰솔림이 섬의 북쪽~남쪽 능선을 따라 발달하였고, 서사면은 칡, 느릅나무, 예덕나무, 팽나무 군락이 발달되었다.

 

웅도는 육지인 진해구 명동의 신명 마을에서 남쪽으로 2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우도에서 남서쪽으로 약 0.75, 초리도에서 동쪽으로 1.5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비교적 규모가 작은 무인 도서이다. 간조 시 북쪽의 소쿠리섬 사이에 바닷길이 열려 걸어 다닐 수 있으므로 이 자연환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소쿠리섬의 선착장을 통해 웅도로 접근할 수 있어 최근에 관광객이 늘고 있다. 또 웅도는 서쪽 해안에 등대가 있어서 지리도 등대와 함께 선박의 길잡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출처:디지털창원문화대전]

 

 

 

 

 

이처럼 여름엔 피서객들이 소쿠리섬을 많이 찾아와 곰섬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 해삼물을 줍기 위해 곰섬으로 향한다. 곰섬에는 무인등대가 있지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없다.

 

 

 

 

곰섬으로 가는 길이 없어 남쪽 방향으로 해변을 따라 걷는다. 홀로 걷는 무인도의 아침은 상쾌하고 온통 세상을 얻은 기분이다. 파도에 밀려지는 자갈 구르는 소리가 아름답게 들리는 그런 곳이다

 

 

 

 

남쪽으로는 자갈로 이어진 해변과 초리도가 보인다. 만약 해변이 이렇게 이어진다면 그대로 선착장이 나올 것으로 기대를 하고 무작정 걸었다.

 

 

 

 

초리도를 마주하는 곳에 이르니 사진처럼 해식애(海蝕崖)가 막아 선다. 모험을 하고 싶었지만 혼자라 포기를 하고 왔던 해변을 따라 다시 돌아간다.

 

 

 

 

도선도 없고 오로지 어선으로만 접근할 수 있는 초리도는 예전에 한번 방문한 적이 있다. 그래서 초리도는 개인 사유지라고 알고 있다.

 

 

 

 

사진을 찍어야 할지 모른척 가야할지 갈등하게 하는 쓰레기 포대들을 보면서 그래도 기록은 중요한 것이라 생각하며 촬영을 하였다. 이 쓰레기들은 두산중공업에서 소쿠리섬에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마대자루에 담았다. 그러나 운반을 하지 못하여 이처럼 다시 쓰레기로 변한 모습이다. 방파제가 없다보니 배를 접안 할 수 없으니 언덕 넘어 선착장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런 일까지는 못한 모습이다.

 

 

 

 

또 한 무더기의 쓰레기 마대자루들이 모여 있다. 아마도 환경단체에서 쓰레기를 주워 이처럼 모아 둔 것 같다. 이왕 하는 봉사활동 다음에 꼭 다시와서 이 쓰레기를 육지로 가져 나오길 바라면서 기회가 있다면 동참을 할 생각이다.

 

 

 

 

다시 선착장이 있는 곳으로 돌아 왔다. 꽤 넓은 이곳이 여름이 되면 야영객들로 가득 찬다.

 

 

 

<2012/8/19 피서객으로 가득한 소쿠리섬 모습>

 

 

 

초리도가 있는 남쪽 방향으로 간다. 허름한 이 집에 노인 한분이 살고 있다. 뒷쪽은 옛 멸치막 건물이 파손된 채 남아 있다.

 

 

 

 

남쪽 방향에서 접근하지 못했던 해식애를 바라 봤다. 10M도 되지 않는 거리임을 알았다. 뒤편은 작은 섬은 사도이다.

 

 

 

 

이곳에서도 초리도를 남겨 본다.

 

 

 

 

선착장으로 돌아와 에기로 낚시를 시도 했지만 한마리도 잡지는 못했다. 통발을 걷고 있는어부 부부의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데 낚시꾼들이 사용한 낚시줄이 통발 어구에 뒤엉켜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비가 많이 내려 화장실로 피신을 하였다. 할일도 없고 심심하여 정면으로 바라 보이는 천장봉과 명동 그리고 STX조선소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라고는 없는 비 내리는 소쿠리섬에서 하릴 없이 도선을 기다리면서 우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돌아 오는 도선은 여객선이 왔는데 어른 3명과 아이 1명을 이룬 가족이 우비를 입고 섬으로 들어 왔다. 여객선이 우도를 거쳐 왔는데 우도에서는 주민 2명이 승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