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섬 여행과 낚시

아는 사람만 아는 섬, 통영 수도와 어의도

천부인권 2015. 11. 12. 13:42

 


<2015/10/28 가조도에서 본 어의도>

 

섬 여행을 시작하면서 전혀 알려져 있지 않은 섬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처럼 그런 섬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하면서 스쳐 지나는 내만에 있다는 것이다. 창원시 지역에서는 창포만에 위치한 양도와 송도가 그런 곳에 속하고, 통영시에서는 고성군 당동만에 위치한 종이섬(紙島), 물도(水島), 어의도, 저도, 입도 등이 그러한 섬들에 속한다. 현재 유인도로 도선이 운행되고 있지만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는 섬들인 것이다. 이런 섬들은 낚시꾼들도 잘 찾지 않는 지역이라 어떤 물고기가 어느 시기에 많이 나오는지도 잘 모르는 곳이다. 대범의섬이라 불리는 창포만의 양도에서 만난 한 낚시꾼은 9월 초순부터 10월말까지 매일 출근을 하듯이 양도의 방파제를 찾아서 낚시를 했는데 25~50cm정도 크기의 감성돔과 돌돔을 하루에 많게는 40마리 정도를 낚았고, 적게는 4마리 정도 매일 낚았다고 하여 놀라게 했다.


 


<2015/11/5 성포항 모습>

 

행정구역은 통영시 용남면 이지만 뭍으로 연결하는 도선의 운행은 거제시 성포로 오고가는 수도와 어의도를 찾아보았다. 사실 거제시의 가조도를 몰랐다면 이 두 섬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뭍과 연결되어 있는지 몰랐을 것이다. 예전에 어의도를 찾았던 블로거는 용남면 내포마을에서 배를 탔다고 하는 기록도 보았지만 지금은 거제 성포로 하루에 3회 도선이 운행되고 있다. 도선의 속도는 생각보다 빨랐는데 수도까지 15분 정도이고, 어의도까지 30분 정도 걸렸다.


 


<수도와 어의도로 가는 도선 모습>



<어의도 수도가는 배 시간표>



<수도를 향해 출발한 도선 위에서 성포항을 남겼다>



<도선 위에서 본 노루섬>



<2015/11/5 도선에서 본 수도 전경>


경유지 물섬(수도)

우리나라 섬들의 지명들이 거의 한자식으로 표기 되고 있는데 사실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어색한 것에 불과하다. 이런 한자식 용어로 정리가 되는 것은 일제강점기에 생겨난 것이 많다. 이는 왜국인(倭國人)은 우리말 발음이 되지 않으니 한자로 개명을 하여 사용한 것이다. 물이 많다고 하여 이름 붙은 물섬이 수도(水島)라는 한자식 지명으로 바뀌는 것도 그런 이유이다. 이곳 통영시 용남면의 물섬이나 창원시 진해구의 물섬 역시 물이 많이 난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의 주소는 통영시 용남면 지도리 산1번지로 면적은 412.184이고, 육지까지의 거리는 2.9km이며, 인구는 17가구 19명 정도가 살고 있다. 물섬이라는 지명이 생긴 것은 섬의 정상부근에 큰 웅덩이다 있는데 이곳의 물은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마르지 않는다하여 붙어졌다.

마을의 형성은 동·서에 자리하고 있으며 음력 12월 그믐날 밤에 외지에서 무당을 불러 굿거리를 하는 풍습이 있으며, 13일 전부터 모든 주민이 목욕재계하고 이 행사를 성대하고 경건하게 지낸다. 하당에서는 정월 초하룻날 조석 시 개인별로 재물을 차려 놓고 개인의 소원을 기원하는 풍습을 가지고 있다.


 


<수도로 향하는 도선 위에서 본 어의도 모습>



<수도로 향하는 도선 위에서 본 가조도 모습>



<수도로 향하는 도선 위에서 본 수도>


성포를 출발한 도선은 빠른 속도로 노루섬을 돌아서 수도로 향하는데 바다 위에 아름답게 펼쳐지는 수도와 어의도, 가조도를 사진으로 남긴다. 수도의 동쪽마을로 향해 도선이 접근한다. 6개의 가구가 보이나 내려 보지 않아 빈집이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주민과 낚시꾼 5명이 내렸다.




<성포를 출발한지 15분도 걸리지 않고 수도마을로 진입한다.>



<도선이 수도의 동쪽마을에 접근했다.>



<수도의 북쪽 방향에 위치한 초아도 모습>


곧장 수도의 부속섬 초아도 사이로 배가 지난다. 수도의 북쪽에 위치한 초아도는 섬의 형상이 챙이()처럼 길게 생겼다하여 이름이 생긴 것으로 토박이 지명인 챙이섬을 음훈차하여 초아도라는 한자식 지명이 생겼다. 면적은 595이고, 육지와의 거리는 4.328km이며, 파손된 건물이 있지만 현재 무인도이다.


 



초아도를 뒤로하고 수도의 서쪽마을로 다가가니 바다에 해상콘도가 설치되어 있다. 마을에는 자연의 모습에 순응한 옛집과 다른 현대식으로 건설한 집들도 보인다.


 


<수도의 서쪽마을에는 해상콘도가 떠있다>




조금 더 접근을 하니 10여 가구가 마을을 이루어 수도의 본 마을은 서쪽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이곳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러 배를 탄 우편배달 아줌마가 주민들에게 물건을 전해주었다 




<물섬 서쪽마을 풍경>



<물섬을 나오면서 뒤돌아 보며 남긴 사진>




이제 수도를 뒤로하고 다시 초아도로 접근을 한다. 챙이를 닮았다는 섬의 모습을 서쪽방향에서 담아 본다.




<초아도를 지나 수도를 배경으로 남긴 사진>


수도와 초아도를 뒤로하면서 언제 다시 이곳을 방문하게 될지 모르지만 사진의 그림으로 남겨본다.




<도선의 정면에는 어의도가 있다.>




어의도 마을 방향으로 돌아가면서 보니 해안이 모두 쓰레기로 덮여 있다. 가장 많이 해안가에 널려있는 쓰레기는 스치로폴 종류의 어구들이고, 일반 생활 쓰레기도 함께 한다. 해안 생태계의 회복을 위해서라도 쓰레기 치우는 운동을 벌여야 할 것으로 보였다.




<이제 어의도 마을이 눈 앞에 있다.>



오늘의 목적지인 어의도의 남쪽은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모습의 산이다. 아직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의도의 중앙인 개미허리처럼 짤록한 부분을 촬영한 모습>


어의도(於義島)

가조도 방향에서 어의도를 보면 지형이 허리가 잘록한 개미 모양을 닮아 충의도(蟲義島)’라 불리기도 한 어의도는 크기가 비슷한 2개의 섬인 큰 섬작은 섬으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다. 두 섬의 중앙에 사주(沙洲)가 발달하면서 섬이 하나로 연결됐다.

섬의 형세가 바다 위에 떠있는 배() 같이 생겨, 배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노를 젓지 않으면 안 되기에 어의여차소리를 낸다하여 생긴 지명이 어의도라 한다. 조선 초기 지명은 어리도(於里島)였으나 어의도(於儀島), 어의도(於義島)로 변했다. 어의도(於義島)의 면적은 429.772이고, 30여 가구에 50여 명이 살고 있다.

어의도는 1603년 고성군 춘원면에 속했으나, 1900년 진남군 가좌면에 편입 되었는데 1914년에 어의리라하여 통영군 통영면에 다시 편입 되었다가 1931년 용남면으로 최종 편입됐다.





어의도에는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우물에 관한 전설이 전하는데 이 섬에는 큰 구기자나무의 뿌리가 감싸고 있는 마을 공동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물을 마신 옛 사람들은 힘이 장사였고 강건하게 장수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1904년 갑진년의 태풍으로 구기자나무와 우물이 파손되어 공동우물이 사라진 후부터는 장사나 장수하는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한다.”





어의도에서는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마을의 평온과 번영을 기원하는 산신제를 지내왔으나 지금은 그런 풍습도 없고 산신제를 지내던 곳도 사람이 접근하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섬에 다양한 약초들이 지천에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배낭을 메고 오는 외지인들이 들락거리더니 그런 약초들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고 한다. 특이 어릴 때 산으로 소먹이고 나무를 하러 갔을 때 무엇인지 잘 몰랐지만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파먹던 것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하수오였다고 전한다. 지금은 산에 올라가보면 그런 약초를 캐간 자국들만 보인다고 말했다.





마을은 동쪽방향에만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 끝에서 사주가 발달한 곳까지 해안도로가 만들어져 있다. 마을 뒤편으로 차량이 지날 수 있는 길이 건설되어 있는데 이는 한전의 변전소가 생기면서 건설되어 졌다한다.


 



이곳 선착장에는 5명의 외지인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학꽁치를 굉장히 많이 잡아 어망에 넣어 두고 있었다. 마을 앞 도로에는 멸치액젓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를 말려두고 있었는데 무엇에 쓰는지 알아보니 거름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멸치액젓 찌꺼기를 실재로 거름으로 사용하여 고추농사를 지어보니 고추나무의 크기도 다르고 고추도 굵으며 병충해도 없었다고 주민들이 증언한다.


 



어의도에는 2013년부터 수돗물이 들어와 생활의 불편함은 없으나 젊은 사람들은 외지로 나가고 없어 섬이 전체적으로 한산해 보였다.


 


<어의도 마을 뒷길을 걸으면서 바라 보는 어의도마을>



<마을 뒷길 높은 곳으로 이동을 한 후 마을의 풍경을 남겼다>



<마을 뒷길에서 본 선착장과 마을 회관 모습>



<어의도에도 가을이 익어간다 수확한 고추를 말리고 있어 바다만 아니라면 어느 시골의 풍경이다>



<어의도는 동쪽사면에 남북으로 길게 연결된 마을 형태를 이루고 있다>



<어의도에는 가을 걷이가 시잗 되어 고구마를 수확하는 집도 있다>



<마을의 남쪽 끝 집은 어의도 교회인데 사람이 없는지 썰렁한 모습이다>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곳으로 이동하여 어의마을을 바라 본다>





<어느 집 앞에는 선인장이 무리를 지어 있다.>




마을 중앙에 말채나무 노거수가 있어 가슴높이 둘레를 재어 보니 226cm이고, 높이는 21m 정도이며, 나이는 200년이라 한다. 이 나무에는 당산제를 지낸 적은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