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섬 여행과 낚시

하늘과 바다가 쪽빛으로 물던 그 곳에 종이섬이 있더라.

천부인권 2015. 11. 16. 06:30


 

 

<2015/10/30 신거제대교에서 바라 본 당동만 풍경>

 

우리나라의 지명이 순 우리말에서 한자식으로 변경되어 사용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많이 생겼다. 倭國(왜국)이 우리말 발음이 되지 않는 면도 있고, 우리의 정신을 말살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행정구역을 변경하면서 많은 지명을 일제식 한자로 바꾼 경우가 있다. 종이섬도 그 중 하나일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 된 우리나라는 해방 후에도 우리말 지명을 사용하지 않고 일제식 한자어로 만들어진 지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볼 때 일제의 식민사관은 우리의 정신을 말살하는 것에 성공을 한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의 행정지명에 종이섬이라는 우리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紙島(지도)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알 것이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서린 종이섬(지도)

민간에서는 종이섬이 생겨난 것에 대해 마고할미와 관련한 전설이 전하는데 옛날 마고할멈이 바다에서 육지에 오르기 위해 이곳에 종이(창호지)를 펼친 것이 섬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종이섬이란 지명이 생긴 것에 대해 조기가 많이 잡히던 곳이라 하여 조기섬이라 불리던 것이 종이섬[紙島]으로 와전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이름이 종이섬인 이유는 몇 가지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닥나무 자생지와 연관이 있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이 종이섬(지도)의 면적은 1.422, 해안선길이 5.5, 최고점 139m이다. 통영시에서 북동쪽으로 7, 고성반도(固城半島)에서 1km 떨어진 해상에 있다.

 


 


 

<2015/10/31 지도호에서 바라보는 원평 선착장>

 

임진왜란 이후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본섬은 서부마을·거망마을·동부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종이섬은 견내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섬으로 동쪽에 있는 마을은 동부, 서쪽에 있는 마을은 서부, 동남쪽에 있는 가장 작은 마을은 거망마을이다. 견내량을 바라보는 남쪽엔 마을이 없다. 해안은 경사가 완만하며, 주요 농산물인 보리·고구마 외에 소량의 쌀이 생산된다. 연안에서는 멸치잡이와 미더덕 양식이 활발하다. 육지에서 지척 거리에 있지만 배가 아니면 오갈 수 없는 섬이다. 용남면 원평리 293-43번지에 종이섬으로 가는 선착장이 위치하며, 도선인 지도호에는 차량을 6대나 싣고 갈 수 있다.

 

 

 


 

도선운항 시간은 사진과 같고 승용차는 왕복 14,000원으로 운전자 1명은 요금이 면제 된다. 성인 1명당 왕복 6,000원이고 중고생은 4,000, 어린이는 1,000원이다. 화물차는 20,000원이고, 오토바이는 2,000원이다.

 

 

 

 

<원평리 선착장을 출발한 지도호에서 바라 본 원평마을 선착장 모습>


 

 

 

<종이섬 방향으로 더 많이 나아가자 원평마을이 보인다>


 

 

 

<선두로 와보니 서부마을과 서부마을 방파제와 선착장이 보인다. 육지인 원평마을과는 불과 10분 거리이다.>


 

 

 

 

종이섬이라 불리는 지도에 입도 하기 전에 고성군 방향을 보니 북섬과 형제섬이 보이고 그 뒤의 배경은 KTX조선소가 자리하고 있다.


 

 

 

<2015/10/31 종이섬(지도) 서부마을 모습>

 

차량으로 종이섬 서부마을에 내렸다. 좌측으로 가야할지 우측 방향으로 가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종이섬(지도)를 방문하기 전 다음(Daum) 지도를 검색했을 때 섬을 한바퀴 도는 일주도로가 완공된 모습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방금 타고 온 지도호는 선착장에 정박 중이고 마을 버스가 주민들을 싣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 마을 버스는 종이섬(지도)를 거쳐 지나는 고압전선의 설치 댓가로 한국전력에서 제공한 것이라 한다.

 

 


 

 

종이섬 일주 도로가 완공 되지 않았다면 되돌아 올 생각으로 좌측 일주도로를 선택하여 차를 몰았다. 그런데 이 처럼 일주도로가 완공이 되었으며, 마을 버스가 따라 오고 있어 천천히 가려고 마을 버스에 길을 먼저 양보했다.

 

 


 

 

일주도로에서 유일한 오르막 도로가 개설 된 구간에서 아름답게 만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남겨 본다. 멀리 형제섬이 점처럼 보인다.

 

 


 

 

망원랜즈을 이용하여 형제섬을 사진으로 남겼다. 가조도 옥녀봉에서는 까만 점처럼 보였던 형제 섬이다. 다음에 고성 일주 도로를 간다면 고성방면에서의 모습도 기록해 둘것이다.

 

 


 

 

일주도로 동부마을 입구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을 남겼더니 거제 성포마을과 가조도연륙교가 멀리 배경으로 나온다. 그 뒤는 거제도 본섬이다.

 

 


 

 

언덕에서 보았던 집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니 이곳은 굴 양식장을 하는 곳으로 양식한 굴 작업을 하는 작업 공장이었다. 언덕 위 한옥 형태의 집은 요근래에 지은 것으로 보여지고 마을과 떨어진 외톨이 집이다.

 

 

 

 

이곳 굴작업공장이 있는 곳은 종이섬의 최 북단에 속하며 이곳에서 동부마을과 거망마을을 조망할 수 있었다.

 


 

앞으로 지나갈 거망마을 방향의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다.

 

 


 

거망마을의 풍경을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사진으로 남겼다. 현대식 건물과 폔션이 자리하고 있다.

 

 


 

<펜션의 모습을 당겨서 본모습>

 


 

앞으로 방문할 동부마을 풍경

 

 


 

섬에서 다가갈 마을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어떤 것을 보게 될지 설레인다.

 


 

망원렌즈로 보니 마을의 수호신인 신목의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동부마을 건물을 보니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모습을 하고 있어 변화에 따른 갈등도 많이 발생할 것으로 보여진다. 보통 섬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외지인이고 정작 주민들은 섬을 떠나버려 남아 있는 원주민과 외지에서 정착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상당한 괴리가 있기 마련이다.

 

 


 

굴 작업공장이 있는 이곳에서는 성포와 가조도를 연결하는 연륙교와 가조도의 해안선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 온다.

 


 

종이섬에서 빤히 보이는 범섬은 앞으로 섬을 개발할 예정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작은 섬을 개발하여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 차라리 종이섬과 같은 유인도를 개발하여 관광자원화 해야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종이섬(지도) 북쪽 끝으로 가보니 물섬(수도)와 어의도가 보인다. 이곳은 수도 방향으로 상당히 먼 거리까지 평평한 바위로 이루어져 수심이 낮게 보였다.

 

 


 

<종이섬에서 바라 본 어의도 모습>

 

 


 

<종이섬에서 바라 본 수도 모습>


 

 

 

<종이섬에서 바라 본 수도 남쪽 모습>


 

 

 

<종이섬에서 바라 본 수도 서쪽 마을모습>


 

 

 

<동부마을 방파제에서 바라 보는 동부마을 모습>


 

 

 

<동부마을 방파제에서 광각렌즈로 본 풍경>


 

 

 

<동부마을 방파제에서 본 거망마을 모습>


 

 

 

종이섬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신목이 있는 동부마을 안쪽을 방문하기 위해 사진으로 그 위치를 남겨 본다.

보건소 건물이 마을의 풍경에 잘 녹아 든것 같다.


 

 

이 동부길을 따라 거망마을로 갈 것이다.

 


 

 

마을버스는 동부마을에서 쉬고 있다. 배 시간에 맞추어 운행을 할 때 거망마을을 거쳐 선착장이 있는 서부마을로 갈 것이다.


 

 

몇년 전에만 해도 학교가 운영이 되었지만 이제 초등학생이 1명도 없어 폐교가 되었다. 이런 섬에 흉가로 변해가는 폐교를 이용하여 교육청이 연수교육장 등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내 놓았으면 좋겠다. 특히 방학을 이용하여 섬 쓰레기를 청소하는 봉사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종이섬의 신목

종이섬(紙島) 동쪽의 동부마을은 거제도 본섬을 마주하고 있는 곳으로 원평분교가 자리하고 있으나 지금은 폐교가 되었다. 이곳 동부마을에는 동부마을의 신목인 팽나무와 느티나무 4그루가 묘하게 배치가 되어 마을을 수호하고 있다. 느티나무 4그루와 팽나무는 뿌리부분이 하나인 듯 보이고 서로의 영역을 피하려다 보니 약간씩 옆으로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

통영시의 보호수로 1972년에 지정이 되어 있지만 4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재조사를 하지 않은 모습이다. 통영시는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을 하였지만 사실은 팽나무가 더 오래되었고 가슴높이 둘레도 더 굵다. 팽나무의 가슴높이 둘레는 370cm이고, 느티나무 4그루 중 가장 굵은 나무의 가슴높이 둘레는 200cm에 불과하다. 따라서 보호수 수종은 모두를 아우르겠지만 명칭은 팽나무로 수정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당시에 110년 이라면 지금은 150년으로 수정해야 하고, 가슴높이 둘레도 310cm에서 370cm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누가 심은 것인지는 모르고 있으며, 예전에는 당산제를 지냈지만 지금은 지내지는 않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정월 보름이 되면 제물을 받치며 제를 지내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한다.

 


 

 

 

당산나무 아래에는 정자를 지어 휴식공간으로 활용을 하고 있다.


 



 

이제 이동을 하여 거망마을 방향으로 오니 범섬과 물섬(수도), 어의도, 가조도가 쪽빛 하늘과 바다 사이의 그림이 되어 나타난다.

 


 

이곳 펜션 앞에서 바라 보는 범섬의 모습이다.

 


 

거망마을 오르막으로 진입하는 곳에 마련한 어느 집 정원의 모습이다. 대단히 많은 정성을 들인 흔적이 보인다.

 

 


 

거망마을을 촬영하려고 언덕 위 빈집의 옥상에 올라 담아 본 마을 풍경이다.

 

 


 

 

그리고 거망마을 방파제의 모습도 보인다. 이곳에는 감성돔이 잡히다 보니 항상 사람들이 낚시를 하는 곳이라 하는데 이 날은 한산한 모습이었다. 오후에는 부부로 보이는 분들이 와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거망마을을 나와 신거제대교가 보이는 남쪽 지역으로 돌아 왔다. 당동만 지역과 거제방향의 바다는 물색도 다르고 물살의 흐럼도 상당히 달랐다. 시무섬 쪽에는 낚시배 두어 척이 낚시꾼들을 태우고 낚시를 하고 있었고, 거제대교 방향에는 댓마라 불리는 전마선이 꽤 낚시를 하고 있었다.

 

 


 

 

일주도로를 한바퀴 돌아 선착장이 있는 서부마을로 되돌아 왔다. '지도호'가 선착장에 정박 중이고 아직 마을버스는 도착하지 않고 있다. 집으로 가야할지 낚시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거망방파제로 가서 다음 배시간까지 낚시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물론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서부마을 방파제에서 본 남쪽 지역 일주도로 풍경

 

 


 

 

종이섬은 규모가 있어서 인지 아니면 마을 발전기금이 있어서인지 선착장에 현대식 공중화장실을 건설해 두었다. 물도 잘 나와 손도 씻고 세수도 했다.

그옆에는 승선장이 마련 되어 있는데 만약 종이섬에 1박을 해야 한다면 이곳에 잠을 청해도 좋을 듯했다. 문만 닫으면 바람도 막아 주고 바로 옆에 화장실도 있어 비박을 하기엔 최적의 장소로 보였다.

 

 



섬 여행은 배를 타면서 시작하고 다시 배를 타면서 마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