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생각하다

창원 봉림동을 상징하는 나무를 찾아보니.

천부인권 2016. 4. 5. 22:29



<2016.4.5 사림동 창이대로 녹지공간(완충녹지)>


봉림동은 경상남도청에서 명곡로터리까지 이어진 창원천을 따라가는 창이대로의 우측에 있는 마을이다. 봉림동 내에는 3개의 동네가 존재하는데 사림동, 봉곡동, 봉림동이다. 사림동은 퇴촌동이라는 지명이 못마땅하다고 창원대학교가 이전하면서 명칭이 바뀌었고, 봉곡동은 지귀동이라는 지명이 더럽다고 새로 지은 지명으로 봉림동의 봉자를 따고, 명곡동의 곡자를 각각 한자씩 따서 만들었다. 따라서 옛 지명을 온전히 가진 곳은 봉림동 하나이다. 그러나 봉림동은 휴거(휴먼시아 거지)라 불리는 휴먼시아 아파트가 봉림동 전체로 볼 때 한쪽 귀퉁이에 처박혀 있는 형국이다.





<2016.4.4 봉림동주민센터에서 본 풍경>



그러나 이곳 창원컨트리클럽으로 가는 길에는 흔하고 흔한 4월의 봄꽃을 대표하는 벚꽃이 가로수로 심어진 곳이다. 아마도 봉림동 전체에서 사진의 이곳이 벚나무 가로수의 전부라 말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봉림동을 대표할 수 있는 수종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다.






<2016.4.5 봉곡동 창이대로 녹지공간>



봉림동은 동에서 서로 길게 벋은 경상남도청이 있는 경찰청사거리에서 명곡사거리까지이다. 창이대로 길이는 대략 4.2km이며, 4차선도로의 3거리 및 4거리의 교차로는 10개 만난다. 창이대로와 주택을 경계 짓는 녹지공간에는 제법 다양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만 수종을 한가지로 압축해서 말한다면 느티나무라 말 할만하다.






<2016.4.5 창원국제사격장 가는 길>



 

사림로99번길을 따라 창원국제사격장으로 가는 642m는 관공서의 상징이라 말할 수 있는 메타쉐콰이어가 식재되어 있어 봉림동의 위용을 보여주지만 도로의 폭이 좁고 주택지가 인접하여 수난을 겪는 나무라 봉림동을 대표한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 나무는 소철이나 은행나무처럼 살아있는 화석으로 분류한다. 메타세쿼이아는 1946년에야 지구에 살아있다는 것이 알려진 식물이다. 이 나무가 처음 발견 된 때는 1937년 중일전쟁 때로 어쩌면 중국이 일본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못했을 수도 있는 나무이다. 학명을 붙인 사람은 중국의 후와 쳉 이다. 메타세쿼이아는 삼나무와 비슷하여 물을 아주 좋아한다는 뜻으로 한자 이름은 수삼(水杉)이다.





<2016.4.5 창원대학교 가는 길의 가로수 느티나무>


 

이에 퇴촌2호교에서 시작하는 퇴촌로를 따라 창원대학교까지 가는 도로에는 느티나무가 가로수로 식재되어 봉림동이 동네 전체적으로 느티나무와 인연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봉림동 당산제를 지내는 신목인 보호수 느티나무가 창원의집 앞 옛 퇴촌동에 남아 있어 봉림동을 대표할 만하다고 말할 수 있다.






<2015.8.11 서울 성균관 명륜당 앞 느티나무와 판석>



느티나무는 성균관 명륜당 앞에도 서있는데 그 느티나무 아래에는 직사각형의 판석이 두 개 놓여 있다. 성균관 명륜당 앞에 느티나무를 식재한 것은 유생들이 공부를 하다가 딴 마음이 들거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을 때 스스로 그 판석위에 올라 종아리를 때리고 自責(자책)하는 장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따라서 옛 선조들은 느티나무를 관운과 출세를 상징하는 나무로 인식을 했다.





<2015.9.13 창원의집 앞 퇴촌동 당산 신목 느티나무>



퇴촌동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를 심은 뜻 또한 성균관 명륜당 앞 느티나무와 마찬가지로 훌륭한 선비가 마을에 나타나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 또한 마을을 들어오거나 나가는 사람은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음을 정결하게 한 다음 마을을 출입하라는 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