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9.25. 고성 오방리지석묘>
아들과 함께한 이번 여행은 壬辰倭亂(임진왜란) 최초로 경남 땅에 도착한 이순신 장군이 하루를 머물다 간 소을비포 성지를 둘러보기 위함 이었다. 所乙非浦城址(소을비포성지) 가는 길목에 固城梧芳里支石墓(고성오방리지석묘)가 위치해 있다는 것을 알고 방문을 해보기로 했다.
固城梧芳里支石墓(고성오방리지석묘)는 1977년 12월 30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된 청동기 시대 유적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고성군 하일면 오방리 산45번지 외 2기가 있다고 하여 ‘오방리 산45번지’를 입력하고 오방리에 도착하니 네비는 이상한 농로를 따라 가도록 유도를 한다. 길을 찾다보니 조그만 마을에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 迂餘曲折(우여곡절) 끝에 마을 할머니를 만나 위쪽까지 차량이 갈 수 있고 주차공간도 있다고 하여 올라가니 아무른 표식이 없어 마을 위쪽에 있는 꽤 너른 梧芳池(오방지)를 한 바퀴 돌았다. 다시 내려오는 길에 ‘오방리 산45번지’에 있다는 지석묘를 찾기 위해 주차가 가능한 곳에 무조건 주차를 하고 주변을 살펴서 겨우 찾았다. 길가에 작은 안내표지판 하나만 설치했어도 이처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을 보물찾기를 하듯 固城梧芳里支石墓(고성오방리지석묘) 1기와 마주 했다. 이 지석묘가 있는 자리에는 누군가의 묘지로 사용하고 있는데 청동기 시대의 사람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나 명당을 찾았다는 증거가 되는 샘이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었다.
『支石墓(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가운데 하나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고인돌 또는 돌멘(Dolmen)이라고도 한다. 이러한 무덤은 한반도 전역은 물론 중국 동북지방과 일본 큐슈(九州)지방에고 분포하고 있다.
이 지석묘가 위치한 곳은 오방마을 동남쪽에 있는 밭 가운데로 오방천 기슭의 평지에 해당되는 곳이다. 이 유적이 문화재로 지정이 될 당시 8기의 지석묘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3기만 남아 있다.
이 지석묘들은 윗돌 아래에 굄돌을 갖춘 南方式(남방식) 구조인 것 같으나 윗돌이 땅과 맞닿아 있어 자세한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윗돌 아래의 무덤방은 돌널(石棺)로 추정된다. 윗돌의 크기는 길이가 2m이내이고, 너비는 1.5m정도 이다. 이 지석묘들은 부근의 학림리에 있는 지석묘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고성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 된다.』
안내판의 내용과 이 자리에 있는 지석묘는 위치도 다르고 평지가 아니라 산등선부에 위치하고 있어 내용의 수정이 필요하다. 또한 다른 2기가 위치한 곳의 지도를 그려 두었더라면 그곳도 방문해 보고 싶었지만 결국 2기의 평지에 있다는 다른 지석묘는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어 포기를 하고 소을비포성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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