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곡리에서 가장 알려진 곳이 있다면 의림사 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림사 방향의 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이 있으나, 같은 인곡리 이지만 정곡마을은 특별히 볼일이 없으면 찾을 일이 없다. 그러다보니 仁谷里 風詠坮(인곡리 풍영대)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인곡리 정곡마을 입구에 있는 노거수 느티나무를 보고 들판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커다란 바위가 들판에 서 있어 고인돌로 착각할 정도였다.
차량을 길가에 주차하고 거석이 놓인 자리로 접근해보니 어떻게 이 바위가 이곳에 있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인근의 암석들과 같은 종류라는 것은 알았다. 풍영대는 계단식 논으로 되어 있는 곳의 논두렁에 잡석을 깔고 그 위에 올려진 모습이다.
자연 거석의 서쪽 면에 ‘風詠坮 茶山處士(풍영대 다산처사)’라 새기고 다른 곳에는 다듬거나 글을 새긴 흔적은 없다. 아마도 다산처사라는 분이 글을 새겼을 것으로 생각되어 지고,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바람을 읊고 즐김을 상징하는 글귀 일 것이다.
정곡마을 앞 인곡들판에 위치한 풍영대는 仙遊岩(선유암) 또는 관에서 쓰던 관인을 닮았다 하여 印石(인암)이라 불리기도 한다. 전에는 풍영대 주변에 잡목과 화초가 자생하여 풍취가 매우 아름다웠고, 이로 인해 시인 묵객들의 발길을 머물게 했다고 한다.
다산처사茶山處士의 본명은 김창로金昌魯 이고 다산茶山은 호號이다. 김해김씨金海金氏 돈헌공遯軒公의 후손으로 1861년에 이 마을에서 출생하여 일찌기 학문에 뜻을 이루니 원근에서 그를 찾는 문인시객文人詩客이 줄을 이었고, 그의 문하를 거친 유생의 수는 수백 명에 이르렀다.
다산茶山이 남긴 시문詩文 가운데 풍영대 원운風詠臺 原韻이 있으니 여기에 옮겨둔다.
風詠臺 原韻 픙영대 원운
風烟起我伴春詠 산들바람 나를 불러 봄을 더불어 노래하니
日暖天晴小野平 날씨 따뜻하고 하늘 맑은데 적은 들은 평평 하도다.
鬼斧千年開鑿地 귀신도끼로 천년 가꾸어 온 땅에
仙棋一點落來枰 신선神仙의 바돌 한점 떨어져 온 판이라.
花残人莫教兒掃 지다 남은 꽃일랑은 아이 시켜서 쓸지 마라.
茶熟吾將挽客行 차茶 끓고 나면 내 곧 길손을 붓드리라.
若問茲遊何意思 만약에 누가 있어 이 놀음의 뜻 물을 진대
緣詩瘦骨送餘生 시詩로 하여 뼈 여위며 덧없이 여생을 보낸다고 하리라.
출처 및 참고
디지털장원문화대전
내 고장의 전설-의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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