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8. 안골동 팽나무 노거수>
안골동 팽나무 노거수는 진해구 안골동 518-2번지에 위치하며 안골포굴강을 40m 앞 바다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아마도 안골포굴강이 옛 모습을 찾는다면 굴강의 축대가 있던 자리가 아닐까하고 생각한다. 현재 안골로와 굴 파는 가건물 등은 모두 매립지이고 마을이 형성 되어 있는 곳 앞까지 예전에는 해안이었을 것이다.
안골동 팽나무 노거수는 옛 안골동 해안지형을 추정해볼 수 있는 중요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굴강의 크기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단서가 되는 노거수 이다.
지금은 안골포 비석군이 없어졌지만 비석군이 있던 자리는 거의 산기슭에 붙어 있었던 것으로 볼 때 비석군을 세웠을 당시엔 지금 마을의 절반 정도가 바다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안골포왜성의 일부도 안골포진성에 포함 되었을 것이다. 이곳의 지형과 통영 당포성지의 모습이 거의 흡사한 모양이라 안골포진성을 지금은 거의 찾을 수 없을지라도 통영 당포성지의 모양을 옮겨 온다면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팽나무 노거수는 어찌 보면 두 그루의 나무가 붙어버린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팽나무 노거수의 특징을 나타내는 세로줄 형상으로도 보인다. 80cm 높이에서 줄기가 갈라져 있는 모양이라 그곳에서 둘레를 재어보니 533cm이고, 120cm 높이에서 가장 굵은 줄기를 재어보니 345cm이다. 높이는 22m, 나이는 380년으로 추정한다.
이곳 안골포는 안골진성이 있었던 곳이지만 임진왜란 때 구로따(黑田張政) 오오또모(大友義統)등이 이끄는 倭(왜) 제3군 병력이 웅천 안골포(安骨浦)에 상륙하여 와끼자카(脇坡安治) 구끼(九鬼嘉陸)등이 이끄는 왜군의 수군(水軍) 병력과 합세하여 단시일에 축성한 왜성의 흔적이 지금도 있다. 성벽의 높이는 4m~7m이고, 성을 중심으로 좌우에 [三之丸] [二之丸]을 둔 일본산성을 쌓아 조선군을 끝까지 괴롭혔던 곳이다.
지금은 이 왜성의 가운데에 영등만호를 역임한 박영규 장군이 1904년 사망 후 묘지로 사용하여 ‘宣略將軍行萬戶朴公永奎之墓(선략장군행만호박공영규지묘)’라는 비석을 세워 왜적의 기세를 누르는 형국이지만 당시 조선군은 왜성을 단 하나도 빼앗지 못한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규장각 고지도 1872년 지방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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