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진해구 제덕동 탁유상 대로개창비

천부인권 2016. 11. 19. 06:00



<2015.04.26. 만호 탁유상 선정비>

 

2015426일 진해구 제덕동에 위치한 제덕동 팽나무 노거수와 제덕진성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비는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에서는卓有詳碑(탁유상비)’라 소개를 하고,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에서는 大路開創碑(대로개창비)’라 소개를 하고 있다. 또한 문화유적의 이름만 소개하고 있는문화유적총람에도 大路開創碑(대로개창비)’라 소개를 하고 있다.





碑座荷葉(비좌하엽) 양식의 卓有詳 大路開創碑(탁유상 대로개창비)는 제덕동 586번지에 있었지만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현 위치인 진해구 제덕동 915번지로 이전을 하여 세웠다. 비문은 풍파에 시달려 잘 알아보기 힘들다. 이 비의 전체 높이는 1.13m, 비신의 높이는 0.76m이다. 비의 뒷면에는 化主 徐德先(화주 서덕선)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가 세워진 것은 탁유상이 薺浦鎭(제포진) 萬戶(만호)로 재직 시 남문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개설하여 준 공덕을 기려 1705년에 주민들이 건립했다.





탁유상은 26세 때인 1678(숙종 4)에 무과 정시 병과 31등 합격자로 楊州(양주) 출신이고, 본관은 加平(가평)이며, 전력은 閑良(한량)으로 기록 되어 있으며, 부친은 卓應男(탁응남)이다.




<2016.11.15 진해 제덕동 탁유상비>


진해문화원에서 1996년 발행한 진해의 비문에는 이곳 제덕동에 碑座圭首(비좌규수) 형태의 安應奎記念碑(안응규기념비)가 사진으로 남아 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니 없어 졌다고 한다. 왜 없어 졌는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徐有應之墓(서유응지묘)가 있던 언덕은 공장개발로 완전히 평지가 되었고, 이 역시 어디로 묘비가 사라졌는지 모른다고 했다.





大路開創碑
蓋鎭城內南門路破[壞]曾欲移路未
果玆者行萬戶卓公有祥壬午七月
日鎭下三里各地董役城外始通大路行
人咸悅故其西三面各投扶物〇〇萬
戶之績焉
康熙四十四年九月日立


뒷면
化主 徐德先


비명의 내용을 위와 같이 옮겼고 내용을 보면
제포진성(薺浦鎭城) 안의 남문로(南門路)가 이지러져 일찍이 길을 옮기려 했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이분 행만호(行萬戶) 탁유상(卓有祥)공께서 임오(壬午;1702)년 7월 어느 날 진(鎭) 아래 세 마을에 일을 시켜 성(城) 밖으로 비로소 큰 길을 여니 지나는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여 그 서쪽 세 개 면에서 각기 물자를 내어 기리니 이는 만호(萬戶)의 업적이라고 밝힌 것이다.
강희(1705년, 숙종 31) 9월 어느 날 세우다.


뒷면
화주(化主) 서덕선(徐德先)






출처 및 참조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국립문화재연구소-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디지털창원문화대전

문화유적총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