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19. 봉산리 구우서 효자비
동읍 봉산리 산 95는 해발 55m이며 「위도 35°16′46.8″N 경도 128°41′33.7″E」이다. 이곳에 세운 ‘鳳山里 具禹書 孝子碑(봉산리 구우서 효자비)’는 松亭里(송정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 비를 찾으려면 창원에서 진영방향의 의창대로(국도 14호)를 따라 용잠리에 가면 동읍 용잠성당에서 창원구씨 세거비가 있는 방향으로 50m 전방에 신호등 없이 좌회전 할 수 있는 옛 길이 나온다. 좌회전 후 50m을 가면 우측 길가에 향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 ‘故孝子參奉綾州具禹書之閭(고효자참봉능주구우서지려)’라 새긴 봉산리 구우서 효자비가 있다.
동읍 봉산리 불피고개 남서쪽에 위치한 이곳의 평탄한 지면에 박석으로 도로보다 조금 높인 후 시멘트로 장방형의 기초 작업을 하고, 그 위에 단을 놓고 다듬지 않은 판석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다듬지 않은 판석을 올려 지붕돌로 삼았다. 그 속에 위가 좁고 아래가 넓은 124×50×30cm 크기의 자연석으로 가운데를 98×21cm 크기로 다듬어 전면에 ‘故孝子參奉綾州具禹書之閭(고효자참봉능주구우서지려)’라 새긴 비를 세웠다. 왼쪽에는 작은 글씨로 昭和十三年戊寅三月日(소화십삼년무인삼월일)이라 새겨 이 비를 후손들이 1939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비에는 동읍 단계리 일원에 살고 있는 문중의 후손들이 매년 10월 묘사를 지낸다.
구우서는 동면 자여사람으로 본관은 綾州(능주)이고, 능주구씨의 시조 具存裕(구존유)의 25세손이다. 비의 뒷면에는 부친은 어렸을 때 여의고 편모를 지성껏 섬겨 고을에서는 효자로 이름이 들어났다. 모친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자 그는 寢食(침식)을 잊은 채 간병하였고 모친의 병이 위급할 때 斷指血珠(단지혈주)하여 13일간 생명을 더 연장케 했다. 그러나 모친이 끝내 세상을 버리자 예를 다해 장례를 치루고 3년 侍墓(시묘)를 했다는 기록을 적었다.
구우서는 시묘가 끝난 후에도 어머니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집안 뒤뜰에 괴목 한 그루를 심었는데 이 괴목이 자라서 사시사철 청청한 가지를 집안에 드려 주었다. 그러나 뒷날 구우서가 죽자 이 괴목은 원인 모르게 말라 죽었으니 당시 향리에서 이 나무를 思母木(사모목)이라 불렀다 한다. 이러한 사실을 前禮曹判書 金宗漢(전예조판서 김종한)이 적었다.
출처 및 참조
내 고장의 전설-의창군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창원시 문화유적분포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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