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7. 창원시의 오지마을 양도·송도>
2016년 12월 ‘경남의 섬 여행’은 광역시 승격을 외치고 있는 창원시이지만 배를 타지 않으면 갈수 없는 오지마을로 남은 송도와 양도를 탐방하기로 했다. 송·양도 탐방으로 창원시에 속한 섬 여행은 끝이 난다. 이제는 창원시에 속한 유인도서로는 구산면의 실리도와 이곳 진동면의 송·양도가 전부이다.
우리 일행은 2016년 12월 27일 7시에 봉곡평생교육센터에서 만나 고현부두에서 8시에 송·양도로 가는 도선을 이용하기로 했다. 필자를 포함 6명은 경남도청이 자리한 제법 큰 규모의 도시인 창원시이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오지 섬마을 탐방에 설렘을 안고 조금은 갑갑하지만 7인승 차량을 이용 했다.
차량 안에서 송·양도를 소개하는 프린트 물을 읽으며 오늘 우리 일행이 가는 곳의 위치와 지형 및 사람 사는 이야기를 대략 알았다. 그리고 고현리(古縣里) 인근의 눈여겨 볼만한 ‘봉래정’, ‘영언각’, ‘행원각’, ‘팔의사 창의탑’ 등과 우산초등학교의 ‘흰등 노거수’와 ‘고현리의 푸조나무 자생지’ 등을 소개 했다.
<송양도호의 선상 내부에서 간식을 나누고 있다.>
진동면 고현리는 미더덕 생산과 축제로 유명한 마을로 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오만둥이로 불리는 이 마을의 특산물인 미더덕을 샀다. 고현(古縣)이라는 지명은 우리나라 각지에 흔하게 있는 마을 이름인데 이곳 진동면 고현은 옛 우산현(牛山縣)이 있던 곳이라 옛날에 현(縣)이 있던 장소라는 의미로 고현이 되었다. 고현선착장에 도착하니 고현과 송·양도를 오가는 도선이 마을주민들을 고현선착장에 내려 주고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들은 각자가 가지고 온 차와 고구마 등을 나누어 먹고 도선에 올랐다.
<일출이 진행된 모습>
붉은 빛을 감추지 않은 태양의 흔적을 따라 양도로 직행한 송양도호는 양도에 우리 일행을 내려 주었다. 뭍에서 10분 거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이지만 도시의 냄새와는 전혀 다른 깨끗한 공기와 갯내음이 아침부터 섬 여행을 서두른 우리들의 마음을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양도의 본래 이름은 대범의도로 ‘범의도’는 『세종 실록』에 등장한다. 또 『경상도 속찬 지리지』에 대범의도가 등장한다. 섬의 면적은 30만 3,000㎡이며, 섬의 최고봉은 해발 94.4m이고 섬의 둘레가 1.9㎞이다. 섬의 규모는 송도 보다 크지만 해안선의 길이는 송도 보다 짧다.
양도는 규모가 큰 선착장이 있는 동쪽에 주로 마을이 이루어져 있고 남쪽 방향으로 바다를 매립한 생활도로가 건설되어있다. 이 도로를 따라가면 정남쪽 소궁도를 바라보는 방향에 작은 방파제와 집이 한 채 있고 조금 더 걸어가면 외딴집 한 채가 있으며 이 길의 끝에 3채의 집과 약간의 밭이 있고 여기에도 방파제가 있다. 우리 일행은 이곳까지 방문하고 다시 송도로 가기위해 큰 방파제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배에서 본 양도마을 모습>
<양도에서 본 송도 모습>
<소궁도 모습>
<팽나무 열매>
<양도 끝에 있는 방파제에서>
<송도에 올라 마을을 향해>
우리 일행만을 위해 송양도호가 다시 배를 띄워 송도로 갔고 잠시 마을을 구경하는 동안 배는 선착장에 대기를 해 주었다. 송도는 선착장이 있는 곳에만 마을이 형성 되어 있어 잠시 동안의 탐방을 마치고 일행들은 곧장 배에 올라 고현으로 향했다. 송도 역시 마을의 중앙에 우물이 있어 이 우물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된 것을 알 수 있다.
<송도마을>
<해안을 따라 늘어선 마을 풍경>
<송도마을을 형성케 한 우물>
<송도마을 뒤편에서>
<선두마을 방파제에 세운 미륵불과 연리목>
고현에 돌아온 일행은 오만둥이로 불리는 미더덕을 산 다음 선두마을로 향했다. 1803년 신유사옥(辛酉邪獄)으로 이곳 우해의 선두마을에서 귀양살이를 하게 된 담정 김려(藫庭 金鑢 1766~1821)가 우해이어보(牛海異漁譜)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漁譜)를 집필했던 곳이다. 우해이어보(牛海異漁譜)란 ‘우해의 이상한 물고기’라는 뜻의 제목인데 정약전(丁若銓)이 지은 자산어보(玆山魚譜) 보다 11년이나 앞서 기록한 것이다. 김려가 남긴 ‘우해의 이상한 물고기’라는 우해이어보(牛海異漁譜)는 한양에 살았던 김려가 볼 때 이상한 물고기였지만 이곳 우해(고현 바다)에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전혀 이상한 물고기가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 익숙한 물고기였다.
선두마을 방파제에는 망주석을 연상케 하는 미륵불이 서있어 배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이 미륵불 앞에는 곰솔과 팽나무가 서로의 줄기를 맞붙이고 서있어 연리목을 연상케 한다. 그리고 이 나무 앞에는 시멘트로 단을 만들어 두어 지금도 선두마을 사람들이 신목으로 받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현리 공룡발자국 화석>
이왕 고현까지 왔으니 경상남도 기념물 제105호인 고현리 공룡발자국 화석(古縣里恐龍足跡化石)을 보고 가기로 해 고현리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진동면 고현리 100-3번지로 찾아갔다. 이곳은 조선소를 통과해야 바닷가에 있는 화석을 볼 수 있다. 안내판에는 “공룡은 중생대의 쥐라기로부터 백악기에 걸쳐 번성을 하였던 길이 5~258cm의 거대한 파충류를 통털어 말한다. 이곳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진동면 고현리 바닷가의 바위가 파도에 의해 깎이면서 드러난 것으로 공룡 20마리의 발자국 화석 400개가 확인 되었다. 이들 화석은 지금으로부터 약 1억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 된다. 발자국의 주인은 두발로 걸어 다니는 초식성 공룡인 이구아나룡의 하나로 밝혀 졌다. 또한 발자국 화석으로 볼 때 이들 공룡은 무리를 지어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고현리 공룡발자국의 특징은 발바닥의 모양을 알 수 있을 만큼 족적이 뚜렷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한 것으로 보존 가치가 아주 높은 자연사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또 비록 지금의 자연 환경이 해안가로 바뀌어 있지만 공룡의 발자국으로 볼 때 당시는 바닷가가 아니라 하천의 범람 지역이거나 호수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공룡발자국은 이 지역 자연환경 변화를 연구하는데 아주 소중한 자료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역시 신앙의 흔적을 엿 볼 수 있는 작은 제단이 마련되어 있다.
<공룡발자국 옆에 있는 제단의 흔적>
<다구리의 풍영대비 모습>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요장리를 거치는 해안로를 선택했다. 다구리마을과 멋진 해안의 풍경은 물론이고 노거수와 풍영대비(風永臺碑)도 찾았다. 옛 선인들도 이곳의 풍광에 반하여 이처럼 나무를 심고 시문을 논했던 것을 기리는 비를 세웠다.
<다구리의 제말장군 묘표비>
그리고 다구리마을을 굽어보는 산자락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26호로 지정된 고성 제씨(諸氏)의 시조(始祖)인 제말장군(諸沫將軍)의 묘가 있다. 제말장군은 당시 무과(武科)에 급제를 했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모아 웅천(熊川). 김해. 의령(宜寧), 현풍(玄風), 문경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전공을 세웠다. 워낙 몸놀림이 빠르고 용맹하여 비장군(飛將軍)으로 불렸으며, 홍의장군(紅衣將軍)이라 불렸던 곽재우(郭再祐)장군과 함께 그 공적이 조정에 알려져 1593년 성주목사(星州牧使)에 임명되었으나 성주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묘비명에는 "유명조선국선무공신 증자헌대부병조판서지의금부사 행성주목사 시충장제공지묘(有明朝鮮國宣武功臣 贈資憲大夫兵曹判書知義禁府事 行星州牧使 益忠壯諸公之墓)"라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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