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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구 웅천 북부동 비석군 – 웅천면장 양제환 송덕기념비

천부인권 2016. 12. 30. 07:26



<2016.11.9. 진해구 북부동 웅천면장 양제환 송덕기념비>

 

옛 국도 2호선변(웅천로)인 진해구 북부동 595-1에는 11기의 비석군이 도로를 따라 일렬로 서있다. 비석군을 바라보는 입장에서 좌측에서 네 번째 비석은 圭首(규수 : 모서리에 각이 있는 것) 형태의 비신을 다듬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비의 정면 중앙에 세로로 웅천 면장 양제환 기념비(熊川面長梁濟煥記念碑)라 새겼다.

自儉喜施 有是有是(자검희시 유시유시) 스스로 검약해도 남에게 베풀기를 기뻐하니 진정 옳고도 좋도다.

布蠲千金 病救一里(포견천금 병구일리) 천금을 널리 베풀어 한 고을의 병을 구제하셨네,

惠我窮蔀 聲彼遠域(혜아궁부 성피원역)우리들의 궁색한 살림에 은혜를 베풀어 그 명성이 멀리까지 번졌도다.

石豈能言 曰碑不泐(석개능언 왈비불륵) 돌에 새긴 글로 어찌 다 말하겠나 마는 이 비석은 영원히 민멸하지 않으리.

辛酉 四月 日立(신유 사월 일립)신유년(1921) 4월 일에 세우다.





양제환(梁濟煥)[1878~1945]은 일제 강점기인 1920920일에 창원군 웅천면장을 지냈다. 1921221일에는 웅천 어업 조합장에 취임하였고, 1926년과 1932년에도 웅천 어업 조합장에 재선임 되었다. 1921년에 양제환의 선정을 기리는 선정비가 건립되었는데, 내용을 보면 진해 웅천에서 웅천면장을 지내면서 일제치하에서도 고을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푼 인물임을 알 수 있다. 1920년 즈음에 돌림병으로 온 마을이 궁핍한 지경에 있을 때 많은 돈을 풀어 양식을 공급하고 병을 구제한 것으로 파악된다.

 




출처

진해의 비문(1996)-진해시

디지털창원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