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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괴대 사라지고 사대유운비 홀로 남은 내서읍 호계리

천부인권 2017. 1. 29. 06:27



 

<2017118일 내서읍 호계리 사대유운비>

 

내서읍 호계리 486-51번지 호계마을회관 앞에는 四代遺韻(사대유운)이라 새긴 비가 서있다. 이 비는 창원의 서쪽에 위치한 虎溪里(호계리)에 두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 쌍수가 마주하고 있어 雙槐臺(쌍괴대)라 이름 했다. 이 쌍괴대의 쌍수 중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던 한 그루는 2012년 쯤 도로 확장을 하면서 베어버렷다고 한다. 지금 호계리에는 쌍괴대라 불렸던 느티나무는 없고 쌍괴대를 기록했던 사대유운비만 마을회관 앞에 서있다.

호계리의 신목으로 자리했던 쌍괴대는 250여 년 전 金寬鉉(김관현 1737~1798)이 호계리에 정착하면서 심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김관현은 21세에 무과에 합격하여 해주 감영의 영장이 되어 감영을 돌아보던 중 90여 명의 죄수들이 기근에 못 이겨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고심하던 그는 3일후 야심을 틈타 옥문을 열어 죄수들을 모두 방면했다. 그 길로 변복을 하고 무작정 남쪽으로 내려와 현 창원시 내서읍 호계리에 이르러 터를 잡고 살다가 초야에 묻혔다.





비의 전면에 가로로 四代遺韻(사대유운)이라 새기고, 김해김씨 김종봉이 자신의 고조부 溪隱(계은), 증조부 匡叟(광수), 조부 匡雲(광운), 부친 農山(농산)까지 4()의 시를 비의 앞에 새겼다. 또한 하겸진(河謙鎭)이 기묘(1939)暮春(모춘, 3)에 지은 쌍괴대명(雙槐臺銘)을 비의 뒷면에 새겼다. 동역으로 백남정(白南正), 김상석(金商錫), 김학배(金鶴培)가 참여하였다.




 

비의 뒷면에는 대는 창원의 서쪽에 있는 호계 마을에 있다. 대 옆에는 늙은 두 그루 느티나무가 마주하고 서 있으므로 이름이 지어졌다. 하루는 금관 김 군 종봉, 경주 최 군 영재가 함께 와서 나에게 새김글을 청하였다. 종봉 군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인 계은 공으로부터 돌아가신 아버지인 농산 공까지 모두가 글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이름이 나서 이 대에서 노닐며 시를 읊조리던 땅이라며 군이 빛나는 자취가 오래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는 바라 장차 돌을 세울 것을 꾀하므로 그 사실을 영재 군의 아버지인 병화 군이 일찍이 알아서 글을 읽고 농산 공을 쫓아서 함께 공부한 여러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도우면 그 뜻이 또한 자랑할 만하리라 하여 새기기를

울울창창한 두 그루 느티나무가 호계에 있으니, 그 줄기와 뿌리가 쇠와 돌같이 보이는 천년 세월 늙은 느티나무 아래에 대가 있도다. 그 높이가 여러 자 되는데 효성스러운 김 군이 빛나는 자취를 사랑하여 끝까지 좇으니 최 군 역시 뜻을 같이하는 동지로서 장차 돌로서 대신 알게 되기를 꾀하니 그 일은 옛날 왕진공의 삼괴만정(뜰에 가득 한 세 그루 느티나무) 뒤에 소동파가 이 대에 새김글을 남긴 것과 같다.

 

기묘(1939)년 음력3월에 하겸진 삼가 읊다 己卯暮春 河謙鎭 謹頌

대는 옛터 뒤에 있다 臺在舊址後





四代遺韻(사대유운)

禮曺門外唱雔詞(예조문외창수사) 예조 문 밖에서 부르는 새 한 쌍의 노래는

吾家長物雙槐在(오가장물쌍괴재) 내 집 크나 큰 두 그루 느티나무에 있네.

灞忼低撗暮渡湄(패항저횡모도미) 강에 가득 저녁 어스름 지는 물가를 건너

歸臥淸陰課子兒(귀와청음과자아) 돌아와 누워 나무 그늘에서 아이를 가르치네.

溪隱(계은)

寒袍遙夜憶鄕詞(한포요야억향사) 얇은 옷 입고 거니는 밤 고향을 그리는 노래는

百磨書釼終無価(백마서인종무가) 오래도록 갈고 닦은 문장의 날은 끝내 쓸데없고

家在雙槐水一湄(가재쌍괴수일미) 집에 있는 두 그루 느티나무 아래 물가에는

歸伴樵翁與釣兒(귀반초옹여조아) 나이든 나무꾼을 따라 낚시하던 아이가 함께 돌아오네.

匡叟(광수)

槐坛落拓慕先詞(괴단낙척모선사) 느티나무 단 위의 돌을 고르며 선조를 그리는 노래는

顯晦縱云元有數(현회종운원유수) 그믐밤 나타나는 세로로 걸린 은하수가 제일 도드라져

忿淚添三漢水湄(분루첨삼한수미) 분한 눈물은 거듭 은하수 물가에 보탤지라도

世嘲堪恥倒绷兒(세조감치도붕아) 세상의 비웃음과 부끄러움도 견디며 어린 아이를 세우네.

匡雲(광운)

江干晴日唱鷗詞(강간청일창구사) 강에 낚싯대 드리운 맑은 날 부르는 갈매기 노래는

可愧穹壤多恨我(가괴궁양다한아) 하늘과 땅이 다 부끄럽도록 한이 많은 나는

憐爾忘機任彼湄(연이망기임피미) 가엾게도 속세의 일을 잊고 저 물가에서

白頭槐屋又敎兒(백두괴옥우교아) 벼슬도 못하고 느티나무 아래 집에서 또 아이를 가르치네.

農山(농산)






雙槐臺銘(쌍괴대명)

臺在昌原治西之虎溪臺傍有古木雙槐對峙而立故名焉一日金官(대재창원치서지호계대방유고목쌍괴대치이립고명언일일금관)

金君鍾奉慶州崔君英在同過余請銘盖鍾奉君自其高祖溪隱公至(김군종봉경주최군영재동과여청명개종봉군자기고조계은공지)

皇考農山公四世皆以文華行治名是臺者其遊息嘯詠地也君懼光(황고농산공사세개이문화행치명시대자기유식소영지야군구광)

蹟之久而泯也將謀竪石刻其事英在君之大人炳化君以嘗受讀于(적지구이민야장모수석각기사영재군지대인병화군이상수독우)

農山遂與同學諸人出金以助之其義亦可尙也銘曰(농산수여동학제인출금이조지기의역가상야명왈)

鬱鬱雙槐虎溪之傍根幹鐵石閱老千霜槐下有臺其崇數尺孝息金(울울쌍괴호계지방근간철석열로천상괴하유대기숭수척효식김)

君克追光跡愛及崔君亦與同志將謀代石以識其事古王晋公三槐(군극추광적애급최군역여동지장모대석이식기사고왕진공삼괴)

滿庭余後東坡此臺亦銘(만정여후동파차대역명)




출처 및 참조

쌍 느티나무 밑의 시인들-작성자 열린누리

창원디지털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