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부산 강서구 성화례산봉수를 찾아

천부인권 2017. 12. 18. 20:56



2017.12.17. 성화례산봉수


가덕도 천성연대봉수 ⇔ 부산 강서구 성화례산봉수 김해 분산봉수 김해 자암봉수 밀양 백산봉수 밀양 종남산 봉수대 밀양 추화산봉수밀양 상동 분항봉수 [제2거 간봉(8)]




2017.12.17. 성화례산봉수를 동쪽 방향의 먼 곳에서 본 모습



2017.12.17. 성화례산봉수 1km 전 출발지


성화례봉수를 방문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지도를 살펴보니 해발 250m 높이까지 자동차로 올라 갈 수 있는 길이 보여 녹산동 산양마을로 향했다. 산양마을의 미로 같은 좁은 도로 때문에 우여곡절(迂餘曲折)을 겪긴 했지만 산행의 출발지인 ‘산양소류지 입구’까지 올라 차량을 주차했다. 이곳에 주차를 한 후 약간의 갈등은 있었지만 봉화대까지 1km이고, 비포장의 도로가 험난해 걸어서 가기로 결심했다.





100m여를 오르니 입산통제를 하여 만약 차량으로 올라 왔다면 후진으로 험난한 비포장 산길을 내려 갈 뻔 했다.





가파른 길이긴 했지만 능선까지 시멘트 포장 이 되어 있어 어려움이 없는 산행이다. 또한 등산로의 거리를 정확하게 기록하여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능선에 거의 도착했을 때 안전시설 넘어로 가덕도와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낭당 임을 암시하는 돌무지


능선에 도착하니 성고개에서 올라 오는 등산로를 만난다. 이곳이 지금은 이름 없는 고개이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한 성황당 고개였을 것이다. 그 증거로 아래에서 주워다 쌓아 둔 돌무지가 형성되어 있다.





성화례산 봉수에 오르기 300m 전에 설치된 팔각정과 운동시설 그리고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다. 아쉬운 것은 팔각정에 이름이 없다. 산 이름을 따서 성화례정(省火禮亭)이라는 편액을 붙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이 팔각정에서도 가덕도 방향의 전망은 꽤 멋진 풍광이다.






운동시설과 팔각정을 뒤로 하고 부지런히 정상을 향한다.





팔각정을 지나고부터는 경사가 그렇게 급하지 않고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두었지만 사람들이 옆에 길을 다시 만들어 다니고 있다. 꼭 필요한 곳이 아니면 그냥 두는 것이 등산객에게는 좋은 등산로이다.





기와 파편과 사기조각 및 옛 봉수꾼이 먹고 버린 조개껍질 등이 보인다.





성화례산봉수는 부산시 강서구 녹산동에 속한 생곡동(生谷洞)과 녹산동(菉山洞)에 걸쳐 위치하는 성화례산(省火禮山)에 있다. 예전에는 성화야연대봉화(省火也煙臺烽火), 성화야봉화(省火也烽火), 성화례산봉수(省火禮山烽燧) 등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봉화산(烽火山 해발 329m)으로 불린다.
성화례산이라는 옛 이름이 있었음에도 봉화대가 있었다고 해서 봉화산으로 불리는 이름도 없는 산으로 변한 옛 경남의 땅이다. 경남의 땅을 강탈하여 부산시에 편입하고 부산시에 건설하기 어려운 매립장 등 각종 혐오시설을 성화례산 아래에 설치했다. 그리고 부산시의 큰 손들이 이미 많은 부분 땅을 잠식하여 옛 경남 김해 원주민들의 삶은 오히려  쪼그라 들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2권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봉수 편에는 이처럼 기록했다.
분산봉수(盆山烽燧) 남쪽으로 성화례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자암산에 응한다.
성화례봉수(省火禮山烽燧) 부 남쪽 51리 지점에 있다. 남쪽으로 웅천현 가덕도에 응하고 북쪽으로 분산에 응한다.
자암산봉수(子巖山烽燧) 남쪽으로 분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밀양부 남산에 응한다.
[盆山烽燧 南應省火禮山 北應子巖山 省火禮山烽燧 在府南五十一里 南應熊川縣加德島 北應盆山 子巖山烽燧 南應盆山 北應密陽府南山]





김해읍지(金海邑誌) 봉수 편에는 아래처럼 기록하고 있다.
분산봉(盆山烽) 부에서 북쪽으로 5리에 있다. 남쪽으로 성화야봉(省火也熢)에 응하고 북으로는 자암봉(子巖烽)에 응하는데 서로의 거리가 30리이다.
생화야봉(省火也熢) 부에서 남쪽으로 51리에 있다. 남쪽으로 웅천 천성봉(天城熢)에 응하고 북쪽으로 분산봉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50리이다.
자암봉(子巖烽) 부에서 북쪽으로 30리에 있다. 남쪽으로 분산봉에 응하고 북쪽으로 밀양 남산봉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30리 이다.
[盆山烽 在府北五里 南應省火也熢 北應子巖烽 相距三十里 省火也熢 在府南五十一里 南應熊川天城熢 北報盆山烽 相距五十里 子巖烽 在府北三十里 南應盆山烽 北報密陽南山烽 相距三十里]




성화례산봉수대 앞에 세운 안내판에는 「봉수대의 설립 년대는 확실치 않으나 조선 세종7년(1425) 전국의 국경지역에 봉수대를 설치할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금단곶보(金丹串堡)의 주둔 병력이 관장하였으며 남쪽의 가덕도 봉수를 받아 북쪽의 분산봉수에 연계한 연변봉수였다. 왜적의 침입에 대비한 선인들의 향토 수호 의식과 국토방위정신을 기리며 계승하기 위해 1991년 9월 강서구청에서 옛터에 다시 복원하였다.」고 소개한다.

봉수군의 집터 주변에는 시누대가 빽빽하게 자라고 있어 봉수군이 할당받은 화살대를 만들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 김해 방향과 성화례산봉수 아래의 쓰레기 매립장 모습



부산 구포 방향



부산 다대포 방향



다대포와 가덕도가 있는 풍경



가덕도와 창원 용원 방향



불모산과 용제봉 방향



김해분산봉수(직선거리 13.75km)가 목격 된다.



옛 웅천현 가덕도의 말곶망(응봉)봉수(직선거리 9km)와 연대봉수(11.03km)가 조망 된다.



부산 아미산의 응봉봉수(직선거리 10.87)km가 보인다.


김해부- 해동지도


해동지도에는 김해부의 봉수를 아래처럼 기록했다.

성화야봉수 남쪽 끝에는 웅천 천성연대에 응하고, 동북에 있는 산성봉수에 응하며 육로이다.

산성봉수 서남 끝에 있는 사화야봉에 응하고 육로이다. 서북에 있는 자암봉에 응하고 육로이다.

자암봉수 동남 끝에 있는 산성봉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밀양 백산봉에 응하며 육로이다.

[省火也烽燧 南末應熊川天城烟臺 東北去應山城烽陸路 山城烽燧 西南末應省火也烽 西北去應子庵烽陸路 子庵烽燧 東南末應山城烽 北去應密陽栢山烽陸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