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7. 서쪽 먼 곳에서 본 분산봉수
옛 가야의 고토인 김해 분산은 김해시의 진산이다. 김해시가지를 발아래 두고 있는 분산봉수는 분산성의 동쪽 끝 부분에 위치하며 주소는 김해시 어방동 산 9이다. 분산성(盆山城 : 323m)은 사적 제66호로 산의 정상부에 띠를 두르듯이 돌로 쌓은 테뫼식산성으로 고려 우왕 3년(1377) 부사 박위(府使 朴葳)가 왜구를 막기 위해 이전부터 있던 고산성(故山城)을 보수하고 축성하였는데, 이후 1871년(고종 8) 김해부사 정현석(金海府使 鄭顯奭)이 개축하여 별장(別將)을 두었다. 분산성은 해안 방어의 요충지에 위치하면서 읍치와 인접하여 유사시 고을을 수호할 수 있는 이점을 지니고 있어서 이 시기 개축한 것이다.
봉수대는 하나만 복원했는데 '1872년지방도'를 보면 봉수 연조 5개가 그려져 있다. 봉수대 아래에는 타고봉(打鼓峯)도 기록 되어 있는데 위급할 때 북을 울려 피난을 하도록 했다.
봉수대를 오르다 암벽을 보면 정기만이 쓴 만장대기념목이라는 싯구를 보게 된다. 시는 이렇게 적었다.
萬丈臺記念木 만장대 기념식수
天生萬丈臺 하늘이 만든 만장대에
我植千年樹 나는 천년수를 심었다.
壬辰孟春 임진년 꽃샘추위가 한창인 봄날에
鄭琪萬 정기만이 쓰다.
분산봉수 계단을 오르며 복원한 봉수대를 사진으로 남겼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32권 김해도호부(金海都護府) 봉수 편에는 이처럼 기록했다.
분산봉수(盆山烽燧) 남쪽으로 성화례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자암산에 응한다.
성화례봉수(省火禮山烽燧) 부 남쪽 51리 지점에 있다. 남쪽으로 웅천현 가덕도에 응하고 북쪽으로 분산에 응한다.
자암산봉수(子巖山烽燧) 남쪽으로 분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밀양부 남산에 응한다.
[盆山烽燧 南應省火禮山 北應子巖山 省火禮山烽燧 在府南五十一里 南應熊川縣加德島 北應盆山 子巖山烽燧 南應盆山 北應密陽府南山]
정기만이 심은 천년수와 봉화대 모습
김해읍지(金海邑誌) 봉수 편에는 아래처럼 기록하고 있다.
분산봉(盆山烽) 부에서 북쪽으로 5리에 있다. 남쪽으로 성화야봉(省火也熢)에 응하고 북으로는 자암봉(子巖烽)에 응하는데 서로의 거리가 30리이다.
생화야봉(省火也熢) 부에서 남쪽으로 51리에 있다. 남쪽으로 웅천 천성봉(天城熢)에 응하고 북쪽으로 분산봉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50리이다.
자암봉(子巖烽) 부에서 북쪽으로 30리에 있다. 남쪽으로 분산봉에 응하고 북쪽으로 밀양 남산봉에 알리는데 서로의 거리가 30리 이다.
[盆山烽 在府北五里 南應省火也熢 北應子巖烽 相距三十里 省火也熢 在府南五十一里 南應熊川天城熢 北報盆山烽 相距五十里 子巖烽 在府北三十里 南應盆山烽 北報密陽南山烽 相距三十里]
만장대 비석과 봉수
가덕도 천성연대봉수 ⇔ 부산 강서구 성화례산봉수 ⇔ 김해 분산봉수 ⇔ 김해 자암봉수 ⇔ 밀양 백산봉수 ⇔ 밀양 종남산 봉수대 ⇔ 밀양 추화산봉수 ⇔ 밀양 상동 분항봉수 [제2거 간봉(8)]
돗대산이 보이는 동북방향은 멀리 부산시가 보인다.
강서구의 성화례산봉수를 마주하면 김해평야가 펼쳐진다.
해동지도에는 김해부의 봉수를 아래처럼 기록했다.
성화야봉수 남쪽 끝에는 웅천 천성연대에 응하고, 동북에 있는 산성봉수에 응하며 육로이다.
산성봉수 서남 끝에 있는 성화야봉에 응하고 육로이다. 서북에 있는 자암봉에 응하고 육로이다.
자암봉수 동남 끝에 있는 산성봉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밀양 백산봉에 응하며 육로이다.
[省火也烽燧 南末應熊川天城烟臺 東北去應山城烽陸路 山城烽燧 西南末應省火也烽 西北去應子庵烽陸路 子庵烽燧 東南末應山城烽 北去應密陽栢山烽陸路]
1872년지방도 봉수부분
광여도 김해부에는 성화야봉, 산성봉, 자암봉 등의 봉수대가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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